•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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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세이코 매뉴팩처 방문기

내용


1960년 세이코의 상위 라인으로 역사를 시작한 그랜드 세이코는 브랜드를 넘어 일본 워치메이킹에 있어서도 특별한 존재다. 현재 스위스 또는 독일에서 내로라하는 워치메이커와 겨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기 때문이다. 진정한 매뉴팩처 브랜드로서 헤어스프링과 메인스프링을 비롯한 정교한 부품부터 시계 제작에 필요한 도구와 기계까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대중적인 쿼츠와 엔트리 기계식 시계로 잘 알려진 일본 시계의 정형화된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다. 숙련된 장인이 만들어내는 고급시계가 주력이다. 지난 2017년에는 더욱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 세이코의 상위 라인에서 독립해 하나의 브랜드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시계에서는 이전의 더블 로고에서 ‘세이코’를 덜어냈다. 빈 자리는 GS 로고와 함께 그랜드 세이코(Grand Seiko)가 위치한다. 어떻게 보면 그랜드 세이코 단독 로고를 쓰던 초창기로 돌아간 셈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술력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그때나 반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이나 추구하는 가치는 변함없다. ‘그랜드’의 사전적 의미처럼 더 원대한 이상을 위해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을 지향한다. 이상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이번에 방문한 두 곳의 매뉴팩처에 있었다.


1960년 그랜드 세이코 최초의 시계



세이코 인스트루먼트 Inc.

모리오카 지역의 세이코 인스트루먼트 주식회사(Seiko Instruments Inc., 이하 SII)는 세이코 그룹에서 시계 제작에 중점을 둔다. 그랜드 세이코에 있어서는 지난 2004년 문을 연 산하의 시즈쿠이시 워치 스튜디오(SHZUKUISHI Watch Studio)와 함께 기계식 9S를 주로 생산해오고 있다. 시계 제작은 수직통합 구조를 바탕으로 SII에서 개발 및 디자인과 부품 생산을 담당하고, 시즈쿠이시 워치 스튜디오에서 무브먼트 일부 부품 생산 및 조립, 헤어스프링 성형과 조정, 케이싱, 테스트, 최종 검수까지 맡는다. 앞선 모든 과정이 한 건물에서 이루어지기에 보다 나은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 즉, 일관된 퀄리티 컨트롤을 통해 품질에 있어 높은 완성도를 보장한다.


일본 모리오카에 위치한 세이코 인스트루먼트 Inc.


헤어스프링 및 밸런스 조정.


기계식 9S

그랜드 세이코는 기계식 9S 시리즈를 통해 스위스의 COSC보다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 먼저, COSC보다 하나 더 많은 6가지 포지션에서 테스트를 진행한다. 수직 포지션에서 다이얼을 12시 방향에 맞추는 테스트 과정을 추가했다. 브랜드 측에 따르면 손목시계를 벗어 책상 위에 두고 탁상시계로 활용하는 사람의 습관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추가된 과정을 통해 2일을 더 테스트하기에 검사 기간도 15일의 COSC보다 긴 17일이다.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허용 일오차는 -3~5초. COSC의 -4~6초보다 2초가량 뛰어난 정확성을 추구한다. 이렇게 보다 높은 수준을 추구할 수 있었던 건 주요 부품 제작에 있어 혁신을 이룬 덕분이다. 이스케이프 휠과 팰릿 포크를 제작할 때 활용한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가 대표적이다. 보다 정확한 형태를 성형하기 위한 MEMS는 준비 과정으로 실리콘을 베이스로 전극을 깔고 그 위에 SU-8 레진을 얹는다. 이후 자외선을 통해 원하는(이스케이프 휠 또는 팰릿 포크) 형태의 레진을 오려내 틀을 만든 뒤, 그곳에 다시 니켈을 채워 전기 주조 방식으로 해당 부품을 제작한다. MEMS를 통해 완성한 이스케이프 휠과 팰릿 포크는 깔끔한 단면을 이루는 보다 정교한 형태에 에너지 효율이 높고 내구성 역시 뛰어나다고 한다. MEMS가 이스케이프먼트의 효율을 높였다면, 그 이전에 일본의 도후쿠 대학과 함께 개발한 스프론(Spron, 코발트-니켈 합금)은 헤어스프링과 메인스프링의 안정적인 성능을 이끌어낸다. 현재 그랜드 세이코는 스프론 610과 스프론 530을 해당 소재로 각각 사용한다. 특히, 헤어스프링에 사용한 스프론 610은 10,000A/m의 자성에도 끄떡없는 항자성에 뛰어난 탄성과 내구성을 갖췄다. 스프론 530으로 만든 메인스프링은 길고 얇지만 뛰어난 내구성으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토크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하이비트 9S85를 탑재한 9S 20주년 기념 모델 SBGH267과 일반 모델 SBGH201



세이코 엡손 코퍼레이션

시오지리에 위치한 세이코 엡손 코퍼레이션(Seiko Epson Corporation, 이하 SEC)은 시계보다는 프린터를 비롯한 복합기와 프로젝터까지 주력이다. 그만큼 회사 규모가 상당하다. 그랜드 세이코에 중점을 둔다면, 회사 내 신슈 워치 스튜디오(SHINSHU Watch Studio)에서 그랜드 세이코의 스프링드라이브 9R과 쿼츠 9F 시리즈를 주로 만든다. 더 정확히는, 기본적인 무브먼트 부품 생산과 조립에서 시작해 케이스는 물론 다이얼과 핸즈까지 직접 생산한다. 주얼리 세팅과 상징적인 자라츠 폴리싱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참고로, 스프링 드라이브를 활용해 크레도르의 소네리와 미니트 리피터를 제작하는 특별 부서 ‘마이크로 아티스트 스튜디오’도 SEC에 있다. 


시오지리에 위치한 세이코 엡손 코퍼레이션


다이얼과 케이스 제작

SII와 달리 SEC에서는 다이얼과 케이스도 직접 생산한다. 그래서 자라츠 폴리싱을 적용한 고유의 케이스와 특수 기법으로 눈의 질감을 살린 스노우플레이크 다이얼이 이곳에서 나온다. 특히, 자라츠 폴리싱은 그랜드 세이코의 대명사로 통한다. 러그부터 이어지는 케이스의 모서리를 한번 더 다듬어 보다 선명한 광택과 결을 얻으며, 결과물이 칼날처럼 빛난다 해서 블레이드 폴리싱이라고도 한다. 제작 방식 역시 일반적인 폴리싱과 차이가 있다. 원형 회전 디스크에 넓은 샌드 페이퍼를 붙이고 그곳에 특수 연마제를 바른 다음 일정한 속도로 케이스의 모서리를 폴리싱한다. 끝으로 결을 살리기 위해 모서리 주변을 가볍게 다듬어 마무리한다.


극소수의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자라츠 폴리싱


쿼츠 9F

쿼츠의 시대를 열고 발전시킨 주역답게 세이코는 해당 분야에 있어 남다른 경지에 올라 있다. 핵심 부품인 쿼츠 크리스털도 인하우스로 직접 만든다. 1993년 첫선을 보인 그랜드 세이코 9F는 그중에서도 90일을 숙성한 크리스털을 사용한다. 에이징 기간 동안 일정한 전압을 걸어 결정 구조를 안정화한 뒤 최상의 재료를 찾는 것이다. 선별한 크리스털로 만든 오실레이터는 안정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온도, 습도 등 환경의 변화에도 비교적 잘 적응해 보다 높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9F가 연오차 ±10초의 높은 정확성을 이룰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다.

최상급의 오실레이터만큼 얇은 스프링이 내장된 브레이킹 휠 역시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스프링의 장력을 통해 초침이 흔들리지 않고 1초를 정확하게 가리킬 수 있도록 하며, 정확성을 위해 1초를 미세하게 두 번 쪼개서 표시하는 트윈-펄스 컨트롤 모터(Twin-pulse control motor)와도 연결된다.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쉽지 않으나 스마트폰의 슬로 모션을 활용하면 그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9F는 정확성 이전에 내구성에 대한 준비도 철저하다. 먼저, 핸즈의 축 사이사이에 각각의 간격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스페이서(Spacer, 받침형 지지대)를 설치했다. 배터리의 누액이 기어트레인을 망치는 것 역시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두 공간을 분리하고 사이에 일종의 실드도 만들었다. 시계의 수명 단축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한 그랜드 세이코의 세심한 기술력이 돋보인다.


9F 25주년 기념 한정 모델 SBGN007


스프링 드라이브 9R

제3의 엔진으로 불리는 스프링 드라이브는 스위스 워치메이킹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세이코의 자부심이다. 메인스프링을 사용한 기계식 메커니즘에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 대신 쿼츠의 오실레이터와 IC(직접회로)로 이루어진 트리-싱크로 레귤레이터(Tri-synchro Regulator)를 결합했다. 덕분에 일오차 ±1초의 높은 정확성을 자랑한다. 이때 4번 휠에 연결된 글라이드 휠(Glide Wheel)이라는 자성체의 부품이 중요 역할을 한다. IC의 코일에서 발생하는 자성과의 상호작용(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으로 4번 휠의 움직임을 제어해 기어트레인의 안정적인 작동을 돕는다. 일반적인 기계식과 달리 초침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도 글라이드 휠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 측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가리켜 ‘글라이드 모션’이라 한다. 결과적으로 4번 휠을 비롯한 기어트레인의 안정적인 움직임은 IC의 소재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기존 IC의 실리콘 플레이트 위에 실리콘 옥시데이션 멤브레인(Silicon Oxidation Membrane, 실리콘 산화 피막)을 추가했다. 덕분에 저전력에서도 고효율을 발휘해 높고 안정적인 토크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파워리저브까지 늘릴 수 있었다고 한다.


특유의 스노우플레이크 다이얼을 사용한 SBGA211. 스프링 드라이브 9R65 탑재.

 


스프링 드라이브 9R65. 로터 부착 전(위쪽)과 후(아래쪽). 



 INTERVIEW


슈지 타카하시(Shuji Takahashi)

President & COO & CMO


Q1. 스와치 그룹이 바젤월드 불참을 선언했다. 바젤월드에 참가하는 세이코에서는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나? 향후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세이코는 1986년부터 빠짐없이 바젤월드에 참여해오고 있다. 올해도 그렇고, 당분간은 계속해서 바젤월드와 함께할 것이다. 스와치 그룹이 빠졌지만 바젤월드는 여전히 업계에서 가장 큰 박람회다. 세이코 시계를 널리 알리기 위한 좋은 자리인 것 역시 변함없다. 현재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디지털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세이코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이전에 전통적인 워치메이킹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이코 시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에 더 집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Q2. 스마트 워치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세이코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나?

스마트 워치가 현재 시계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현대인에게는 스마트폰이 있다. 그리고 스마트 워치 이전에도 시계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많은 기능을 제공했다. 물론, 스마트 워치는 더 발달하고 또 유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전통적인 시계와 워치메이킹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정통 시계는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스마트 워치에 없는 역사와 장인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수작업에 기반한 워치메이킹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Q3. 전통적인 워치메이커도 간간이 스마트 워치를 만들기도 한다. 세이코도 그럴 계획이 있는지?

우리는 매뉴팩처를 보유한 워치메이커지 IT 회사가 아니다. 때문에 세이코와 그랜드 세이코는 앞으로도 정통 워치메이킹을 바탕으로 장인정신에 더 집중할 것이다. 물론, 세이코 또한 뛰어난 스마트 워치를 만들 기술력을 갖추었고 블루투스를 통해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시계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고객의 요구로 스마트 워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건 시계를 대하는 자세와 장인정신에 기반한 세이코의 철학이다.


Q4. 현재 그랜드 세이코에서 퍼페추얼 캘린더 이상의 컴플리케이션은 없는 것 같다.

미디어 투어 기간 동안 마이크로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으로 안다. 세이코는 그곳에서 크레도르의 스프링드라이브 미니트 리피터와 같은 컴플리케이션을 제작한다. 크레도르와 그랜드 세이코, 그리고 세이코가 지향하는 가치는 조금씩 다르고, 그에 맞는 각각의 철학이 있다. 그랜드 세이코는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을 통해 최고의 만듦새와 정확성을 추구한다. 8일의 파워리저브를 지원하는 스프링드라이브 SBGD201J와 같은 모델이 좋은 예다. 겉은 간결하지만 무브먼트는 세밀한 피니싱에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8일의 파워리저브를 지원하는 스프링드라이브 SBGD201J 

문의 그랜드 세이코 02-2225-7109 www.grandseik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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