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태양, 해변 그리고 바다.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를 처음 집어들었을 때 떠오른 이미지다. 마침 튜더가 신제품을 선보인 시기 유럽 전역은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등장한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여름의 청량함을 담아내면서도 여름용 시계로만 한정되지 않는 매력을 보여준다. 뜨거운 계절에는 라군 블루처럼 보이는 다이얼 컬러가 겨울에는 아이스 블루 톤으로 변하며 사계절 어디서든 잘 어우러진다.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어떤 자리, 어떤 손목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지름 37mm 크기 덕분에 남녀 모두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다. 마치 모든 손목을 위해 설계된 듯 착 감기는 느낌을 준다. 이전까지는 지름 38mm가 남성 시계의 최소 사이즈라 여겨졌지만, 신제품은 날카로운 러그 덕분에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HANDS ON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지름 37mm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손목에서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적인 디자인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계절과 성별을 가리지 않듯, 스포티함과 우아함 사이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다이버 워치로 설계됐지만 5연 주빌리 브레이슬릿으로 한층 세련된 인상을 더했다. 어느 상황에서도 손색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블랙 베이 54는 결코 가볍게 디자인된 시계가 아니다. 개성 있는 디자인 뒤에는 긴 역사와 전통이 뿌리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블랙 베이 54는 1954년을 기념한다. 바로 튜더가 첫 다이버 워치인 Ref. 7922를 출시한 해다. 당시 모델은 100m 방수를 지원했고, 1956년에는 200m 방수 성능을 갖춘 버전도 등장했다. 이때부터 프랑스 해군과의 협업도 시작됐다.

테스트 모델의 다이얼에서도 1954년부터 이어져온 디자인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 방향의 길쭉한 삼각형 마커, 3·6·9시 방향 바 인덱스, 야광을 입힌 롤리팝 초침, 미세한 톱니 모양으로 마감한 외부 회전 베젤 등이 그렇다. 베젤은 분 단위 눈금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5분 단위 인덱스만 막대와 아라비아 숫자로 번갈아 새겨 넣었다.
당시에는 이런 다이얼 디자인이 튜더를 대표하게 되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이스터 프린스 서브마리너라는 이름을 갖춘 Ref. 7922는 당시 튜더가 롤렉스의 '합리적인 대안' 혹은 가격 경쟁력이 높은 형제 브랜드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독자적인 정체성은 아직 미약했다. 튜더만의 상징적인 디테일은 시간이 흐르며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노플레이크 시침이다. 1954년 Ref. 7922에는 없었지만 1969년에 도입돼 지금은 브랜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에도 당연히 스노플레이크 시침이 적용됐다.
스펙
Black Bay 54 Lagoon Blue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
제조사 몽트르 튜더 SA, 제네바, 스위스
레퍼런스 M79000-0001
기능 시·분·초, 스톱 세컨드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폴리싱 및 새틴 마감
베젤 60클릭 단방향 회전 베젤, 반짝이는 숫자 디스크
글라스 약간 볼록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
방수 200m
무게 100g
다이얼 밝은 블루, 볼록하고 질감 있는 표면, 인덱스와 핸즈에 야광 처리
크기
지름 37mm
두께 11.2mm
러그 투 러그 45mm
러그 너비 20mm
무게 125g
무브먼트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MT5400,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28,800vph, 70시간 파워 리저브, COSC 크로노미터 인증, 양방향 회전 로터
브레이슬릿과 버클 스테인리스 스틸, 5연 브레이슬릿, 폴리싱 및 새틴 마감, 튜더 티핏(T-fit) 버클, 보호 덮개 포함
작동 안정성 테스트(와인딩 후 24시간 경과 시점)
포지션 간 최대 편차: 5초
평균 일오차: 0초 / 24시간
착용 시 평균: 일오차 0초 / 24시간
가격 599만원
레트로한 요소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곳곳에 헤리티지를 담았지만 절대 레트로한 시계는 아니다. 튜더는 클래식한 디테일을 절묘하게 활용해 철저히 현대적인 외관을 완성했다. 균형 잡힌 비율 덕분이기도 하고 거울처럼 반짝이는 베젤과 브레이슬릿, 무엇보다 다이얼이 뿜어내는 강렬한 인상 때문이기도 하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색감으로 빛나는 다이얼은 거친 질감 덕분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빛을 받을 때마다 다채로운 반사를 만들어내는 다이얼은 바닷물이나 얼어붙은 얼음을 떠오르게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많은 디테일이 숨어 있다. 살짝 볼록한 다이얼, 베젤에 새겨진 숫자와 인덱스는 다이얼의 질감을 돋보이게 한다. 한눈에 드러나는 요소는 아니지만 시계를 오래 바라보며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고급 시계가 선사하는 소소하면서도 깊은 즐거움 중 하나다.
흥미로운 점은 튜더가 브랜드 상징을 다루는 방식이다. 롤렉스와 튜더의 창립자인 한스 빌스도르프는 영국에 깊은 애정을 지녔다. 매일 아침 <더 타임즈>를 읽었을 정도다. 영국적 색채는 튜더 왕조에서 따온 브랜드명뿐 아니라 1936년 처음 사용된 '튜더 로즈'에서도 드러난다. 튜더 왕조의 상징이었던 장미가 다이얼을 장식한 것이다. 장미는 초창기에는 문장 방패 속에 장식됐고 이후에는 방패 없이 다이얼에 직접 새겨졌다. 1969년부터는 장미 대신 방패 로고가 점차 도입됐다. 오늘날에는 다이얼 12시 아래에 방패 로고와 브랜드명이 함께 자리 잡고 있지만, 다섯 잎 장미는 여전히 크라운에 새겨져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성능 무브먼트
시계는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MT5400으로 구동한다. 수년간 검증된 무브먼트로 이름의 54는 모델명과 마찬가지로 1954년을 상징한다. 54 칼리버는 56이나 58 시리즈보다 사이즈가 작다. 앞자리의 0은 날짜창이 없음을 뜻한다. 칼리버는 진동수 28,800vph로 구동하며 최신 기술을 집약했다. 밸런스 휠은 밸런스 콕이 아닌 양쪽에서 고정된 브리지 구조로 설계돼 안정성을 높였고,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은 자기장과 온도 변화, 충격에 강하다.
프리스프렁 밸런스 구조 덕분에 오차 조정은 테스트 결과 레귤레이터가 아닌 밸런스 휠의 무게추를 통해 이뤄진다. 밸런스 스프링이 레귤레이터에 얽매이지 않고 본래 길이를 유지한 채 작동하기 때문에, 오차를 정밀하게 맞출 수 있어 안정적이다. 최근 들어 각광받는 사양이지만 ETA나 셀리타 등 범용 무브먼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술이다. 셀프와인딩 칼리버 MT5400은 70시간 파워 리저브를 보장해 금요일 오후 시계를 벗어두어도 월요일 아침까지 거뜬하다. 높은 정밀도를 보장하기 위해 튜더는 MT5400을 독립 스위스 기관 COSC로부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 COSC의 기준은 하루 오차 범위가 -4초에서 +6초 정도다. 튜더는 이보다 더 엄격한 자체 목표치인 -2초에서 +4초로 오차 범위를 설정했다.
테스트 시계는 비치(Witschi)사의 오차 측정기에서 더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크라운이 아래를 향할 때 -1.8초, 다이얼이 위로 향할 때 +3.3초를 기록했다. 나머지 네 위치에서는 거의 0초에 가까운 성능을 보였다. 평균 오차는 0.4초로 탁월한 결과였다. 다만 위치별 최대 편차가 5.1초에 달해 아주 엄격한 기준에서는 만점에 미치지 못했다.
수많은 장점과 두 가지 아쉬움

전통적인 방패 문장을 새긴 ‘티핏’ 버클은 튜더답게 아름다운 디테일이지만, 여닫을 때는 다소 뻣뻣하게 느껴진다.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에는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두 가지 단점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튜더 특유의 티핏(T-fit) 버클이다. 보호 덮개에 새겨진 방패 로고는 시각적으로는 훌륭하나 손톱으로 여닫기 다소 불편하다. 둘째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베젤이다. 고급스러운 광택을 자랑하는 만큼 지문이 쉽게 묻는다. 물론 이를 얼마나 신경 쓰느냐는 개인 취향의 문제다. 이 외에도 통합 브레이슬릿에 익스텐션 기능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날짜창을 갖추지 않았지만, 오히려 다이얼을 더 균형 있게 보이게 해 아쉬움보다는 장점에 가깝다.
튜더 블랙 베이 54 라군 블루는 다이버 워치지만 전형적인 툴 워치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방향 회전 베젤과 나사식 크라운, 견고한 케이스백 덕분에 200m라는 높은 방수 성능을 제공한다. 깊은 수심에서도 시야를 사로잡는 다이얼 컬러는 수상과 수중 활동 모두에 적합하다. 동시에 어떤 상황, 어떤 손목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올 라운더 워치이기도 하다. 라군 블루 컬러는 다이얼에 특별한 개성을 부여하며, 무엇보다도 시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만든다. 언제나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장점
+ 매력적인 다이얼 색상
+ 역사적인 요소를 담은 현대적인 디자인
+ 콤팩트한 사이즈
+ 강력한 인하우스 무브먼트
+ 높은 정확도
+ 합리적인 가격
단점
- 지문이 잘 묻는 베젤
- 뾰족한 로고 때문에 여닫기 다소 불편한 버클
테스트 결과
스트랩과 버클(최대 10) 9
고급스럽게 마감된 5연 브레이슬릿은 시계 디자인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안정적이고 미적으로 완성도 높은 버클을 갖췄다.
케이스(10) 9
클래식한 디자인의 케이스로 가장자리 페이즈 처리 덕분에 매력이 상승한다. 정확하고 촉감 좋은 베젤에도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다이얼과 핸즈(10) 9
거친 질감 덕분에 매력적인 색상이 더욱 돋보인다.
디자인(15) 14
역사적인 요소와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인상이 흥미롭게 결합됐다. 약간의 절제와 놀라운 다이얼 색상이 조화를 이룬다.
가독성(5) 5
뛰어난 가독성을 갖췄다. 풍부한 야광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도 시계를 편안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조작성(5) 3
작은 크라운 크기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당기고 돌리기 쉽다. 버클을 열 때 튜더 방패 로고 끝에 손이 닿아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착용감(5) 5
5연 브레이슬릿 덕분에 손목에 매우 잘 맞는다.
무브먼트(20) 20
최고 성능을 갖춘 인하우스 칼리버로 긴 파워 리저브와 뛰어난 내자성을 갖춘 데다 크로노미터 인증까지 받았다.
작동 안정성 결과(10) 9
6개 위치에서 편차가 거의 없고 최소 오차로 평균 0에 가까운 안정성을 보여준다.
가격 만족도(10) 5
매력적인 가격을 갖췄고 중기적으로 재판매 가치도 높다.
크로노스 평가 87점
대안 모델

브라이틀링 슈퍼오션 오토매틱 36
청량한 톤의 다이얼을 얹어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름 36mm 크기 덕분에 남녀 모두 착용할 수 있다. 튜더와 달리 디자인에 의도적으로 레트로한 요소를 가미했다. 인하우스 칼리버 대신 셀리타 기반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했으며, COSC 인증을 받았다. 파워 리저브는 38시간으로 짧은 편이지만 300m 방수를 보장한다. 가격 5250유로(약 878만원)
게재호
101호(11/12월호)
글
뤼디거 부허(Rüdiger Bucher)
Editor
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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