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게가 펼친 시간의 장

브레게는 작년,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며 기념 시계를 여럿 선보였다. 변색에 강하고 시간이 지나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인 새로운 골드 합금도 함께 공개했다. 브레게 창립 250주년을 돌아보며, 각 챕터의 의미를 짚었다.
  • 2026.01.08

    2026.01.13

  • By 유현선


 

시계 제작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브레게만큼 영향력 있는 이름은 드물다. 시계 제작을 시각적·기계적 완성도의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존재이자, 생전부터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브레게의 250년을 과연 어떻게 온전히 기릴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브레게의 업적을 깊이 연구하며 그 전통 위에서 작업해온 또 한 명의 위대한 시계 제작자, 고(故) 조지 다니엘스(1926–2011년)의 말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브레게를 10년 이상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시계 제작에 대해 매우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것은 단순한 복원 작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배움이었다."


1975년, 다니엘스는 방대한 연구 성과가 사라지지 않도록 <The Art of Breguet>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브레게가 남긴 수많은 발명과 메커니즘을 담은 500점 이상의 기술 도면이 수록됐다. 다니엘스가 본격적으로 시계를 만들기 시작하기 이전에 정리한 결과물이었다. 이 작업의 의미는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았다.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의 발명가이기도 한 다니엘스는 연구를 진행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브레게의 모든 작품에는 분명한 점진적 발전의 패턴이 존재했다. 그는 수없이 다양한 유형의 시계를 만들었지만, 각각의 작업은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발전의 흐름 속에 있었다."


이러한 발전에는 투르비용, 퍼페추엘(perpétuelle) 셀프와인딩 메커니즘, 미니트 리피터를 위한 공(gong) 스프링, 오버코일 헤어스프링, 그리고 파라슈트(pare-chute) 충격 방지 시스템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브레게의 관심은 정확성과 신뢰성의 향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기능성을 중시한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며, 끝이 비대칭적인 달 모양 팁을 갖춘 핸즈와 고유한 숫자 인덱스를 도입했다.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에 사용된 핸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다듬은 뒤 블루잉 처리된다. 순수한 워치메이킹 전통을 계승한 과정으로, 핸드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는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 핸즈는 훗날 '브레게 핸즈'로, 인덱스는 '브레게 숫자 인덱스'로 불리게 된다. 다이얼에는 기요셰 장식을 적용했다. 일상적인 마모로부터 다이얼을 보호하는 동시에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브레게가 판매한 에나멜 다이얼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는 시계를 더욱 얇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브레게의 혁신은 제작에 그치지 않았다. 1796년 서브스크립션 포켓 워치를 선보이며 시계 유통과 판매 구조에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브레게의 헤리티지 총괄 책임자이자 전설적인 워치메이커의 7대손인 엠마누엘 브레게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문 시 가격의 4분의 1을 선납하는 구조를 통해, 브레게는 제작 자금을 미리 확보해 장인들의 작업 보수를 선지급하고 생산을 안정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시계 업계에서 전례가 없는 비전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브스크립션 포켓 워치는 광고 팸플릿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선 진정한 혁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브레게는 잠재 고객에게 직접 다가가며, 수준 높은 교육적 설명까지 함께 제공했다."


CHAPTER 1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화이트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을 골드 베이스 위에 구현한 브레게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 Ref. 2025BH/28/9W6. 케이스 지름은 40mm이며, 가격은 7300만원대다.


사람들이 기대했을 법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단 하나의 핸드를 갖춘 시계로 놀라움을 전하고 싶었다. 

- 그레고리 키슬링(Gregory Kissling), 브레게 CEO

1796년 선보인 서브스크립션 포켓 워치는 229년이 지난 오늘, 브레게 팀에게 다시 한번 영감을 주었다. 메종은 이 역사적 모델을 출발점으로 삼아, 창립 250주년 기념 여정의 첫 장을 여는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Ref. 2025BH/28/9W6을 공개했다. 브레게 CEO 그레고리 키슬링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기대했을 법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단 하나의 핸드를 갖춘 시계를 통해 놀라움을 전하고 싶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여도 무브먼트의 구조에 상당한 밀도가 더해졌다. 1799년 화살 모양의 핸드를 만져 시간을 읽을 수 있었던 포켓 워치 '택트 워치'에서 영감을 받은 디테일이다. 이 모델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 곧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풀 다이얼을 갖춘 손목시계에서 트래디션 아키텍처의 무브먼트를 선보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복원된 팬토그래프 장비를 사용해 브레게 시계의 다이얼에 시크릿 시그너처를 각인한다. 200여 년 전 이 시그너처는 브레게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인증 수단이자, 위조를 방지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했다.


메종의 풍부한 유산을 향한 또 다른 오마주는 다이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키슬링은 "그랑 푀 에나멜 전통을 선택했고, 숫자에는 프티 푀 기법을 적용했으며, 시크릿 시그너처도 더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이 시그너처가 에나멜 다이얼 위에 톤온톤 전사 방식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시대에는 다이아몬드 팁을 단 팬토그래프를 사용해 새겼다. 우리는 그 시대의 팬토그래프를 구입해 복원 공방에서 드라이 포인트 기법으로 시크릿 시그너처를 각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핸드 역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작업 정련과 블루잉을 거쳐 완성되는, 순수한 워치메이킹 전통의 결과물이다." 참고로 브레게는 팬토그래프를 조지 다니엘스의 컬렉션에서 확보했다.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를 통해 브레게는 250주년 기념 모델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될 새로운 골드 합금도 함께 선보였다. '브레게 골드'라 명명된 이 합금은 금, 은, 구리, 팔라듐을 결합한 블론드 톤의 귀금속으로, 역사적인 브레게 시계가 지녔던 고유한 색감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지름 40mm 미들 케이스에는 전통적인 브레게 플루팅 대신 새틴 브러시드 피니싱이 적용됐고, 러그는 손목에 보다 자연스럽게 밀착되도록 곡선을 더했다.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에 탑재된 핸드와인딩 칼리버 VS00는 21,600vph로 작동하며, 싱글 배럴로 약 4일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시계의 정밀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밸런스 스프링은 블루잉 처리됐으며 브레게 오버코일을 적용했고, 비자성 합금 니바크론(Nivachron)으로 제작됐다. 중앙의 래칫 휠에는 서브스크립션 무브먼트의 설계를 설명하는 창립자의 문구가 각인되어 있다.


CHAPTER 2

트래디션 세컨드 레트로그레이드



블루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에 기요셰 장식을 더한 브레게 트래디션 세컨드 레트로그레이드 7035 Ref. 7035BH/H2/9V6. 케이스 지름은 38mm이며, 가격은 6900만원대. 전 세계 250개 한정.


트래디션 컬렉션은 2005년 탄생했다. 시계 장인이 작업대에서 무브먼트를 마주할 때와 동일한, 내부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이 컬렉션의 핵심 개념이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블루 에나멜 다이얼을 결합한 트래디션 세컨드 레트로그레이드 Ref. 7035BH/H2/9V6는 지름 38mm 케이스로 선보이며, 브레게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두 번째 모델로 공개됐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시계 다이얼에 기요셰 장식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기요셰는 지금까지도 브레게를 대표하는 핵심 기술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롭게 선보인 퀘드올로지 패턴은 과거 브레게의 공방이 자리했던 시테 섬과 생루이 섬을 감싸 흐르는 센 강의 물결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됐다. 


브랜드에 따르면, 다이얼에 적용된 새로운 기요셰 패턴은 과거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공방이 자리했던 시테 섬(Île de la Cité)과 생루이 섬(Île Saint-Louis)을 감싸 돌며 파리 중심부를 흐르는 센 강의 유려한 곡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현재 브레게는 실사용 가능한 기요셰 선반을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로 보유하고 있으며, 복원된 기계들은 클루 드 파리(Clou de Paris)와 같은 전통적인 문양부터 새로운 퀘드올로지(Quai de l’Horloge)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티브를 제작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셀프와인딩 칼리버 505SR는 21,600vph로 작동하며 약 5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플래티넘 로터는 1780년경 프랑스 왕실에 브레게의 이름을 알린 최초의 셀프와인딩 시계 '퍼페추엘(perpétuelle)'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글라스백에서는 수직 브러싱 처리한 플래티넘으로 제작된 칼리버 505SR의 초승달 형태 오실레이팅 웨이트가 눈에 띈다. 이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 시대에 사용되던 자동추를 연상시키는 요소다. 브레게는 플래티넘을 활용해 '퍼페추엘(perpétuelle)'이라 불렀던 셀프와인딩 시계의 효율을 최적화했다. 시계 제작에 플래티넘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선구자 역시 브레게였다. 이는 그의 초기 주요 혁신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레고리 키슬링 CEO는 이렇게 설명한다. "브레게의 DNA는 바로 여기에 있다. 멀리서도 즉각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시각적 정체성, 그리고 분명한 개성을 지닌 디자인이다. 이 두 번째 기념 모델은 그러한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기요셰 다이얼과 케이스 모두에 브레게 골드를 사용해 메종의 유산에 대한 진정한 헌사를 완성했으며, 장엄하면서도 확연히 차별화된 존재감을 드러낸다. 또한 트래디션 컬렉션이 서브스크립션 워치에서 발전한 '택트 워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놓인 모델이기도 하다."


CHAPTER 3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75



블랙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다이얼을 갖춘 브레게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75 Ref. 2075BH/99/398와 실버 다이얼 버전의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75 Ref. 2075BH/G9/398. 두 모델 모두 케이스 지름이 38.3mm이며, 가격은 각각 5900만원대, 6100만원대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1814년 프랑스 경도국(Bureau des Longitudes)의 일원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해군의 공식 크로노미터 제작자로 임명됐다. 1816년에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됐으며, 1819년에는 루이 18세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브레게 가문의 이름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그의 증손자인 루이 샤를 브레게(1880–1955)였다. 프랑스의 항공기 설계자이자 초기 항공 산업의 선구자였던 그는 항공 회사를 설립하고, 50여 년에 걸쳐 복엽기에서 단엽기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항공기를 개발했다. 그 가운데 브레게 19는 폭격기이자 정찰기로 널리 활용되며 장거리 비행의 상징적인 기종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초, 프랑스 공군은 조종사용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위한 입찰을 진행했으며, 이를 '타입 20(Type 20)'이라는 코드명으로 명명했다. 이 입찰에서 선정된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브레게였다. 이에 대해 엠마누엘 브레게는 이렇게 설명한다. "브레게 가문은 이미 시계 브랜드를 매각한 상태였지만, 두 세계 사이의 연결 고리는 여전히 존재했다. 루이 브레게가 항공 분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며 이러한 생산적인 만남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1952년은 브레게 계측 시계의 출발점이 된 해였다. 프랑스 공군을 위한 타입 20, 해군 항공대를 위한 타입 XX라는 두 가지 군용 버전이 제작됐고, 1955년 선보인 골드 케이스 모델을 포함해 민간 시장을 위한 다양한 타입 XX 파생 모델도 뒤따랐다. 이러한 역사에 기반해 브레게는 현대 컬렉션에 타입 XX 라인을 다시 도입했으며, 2023년에는 네 번째 세대를 공개했다. 그리고 블랙 알루미늄 다이얼 버전 Ref. 2075BH/99/398과 250개 한정 제작된 솔리드 실버 다이얼 버전 Ref. 2075BH/ G9/398으로 구성된 타입 XX 레퍼런스 2075는 브레게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세 번째 챕터를 장식했다.




브레게 골드 케이스의 타입 XX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에 탑재된 핸드와인딩 칼리버 7278과 7279는 36,000vph로 작동하며, 플랫 실리콘 헤어스프링과 실리콘 혼을 적용한 인버티드 인라인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를 갖췄다. 파워 리저브는 약 60시간이다. 


케이스 지름은 1955년 역사적 모델과 동일한 38.3mm, 두께는 13.2mm로, 케이스 전체는 브레게 골드로 제작됐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두 모델에 브레게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728을 기반으로 한 핸드와인딩 버전이 최초로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CHAPTER 4

클래식 투르비용 시데랄



그랑 푀 에나멜 어벤추린 다이얼을 갖춘 클래식 투르비용 시데랄 7255 Ref. 7255BH/2Y/9VU는 브레게가 남긴 가장 유명한 이스케이프먼트 발명을 기념하는 모델이다. 케이스 지름은 38mm, 가격은 3억원대. 전 세계 50점 한정으로 제작된다. 


브레게는 2025년 6월 26일,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투르비용 발명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1801년 6월 26일을 기념해 창립 250주년 기념 여정의 네 번째 챕터를 공개했다. 이날 선보인 모델은 어벤추린 다이얼과 플라잉 구조의 투르비용 케이지를 갖춘 지름 38mm의 클래식 투르비용 시데랄 7255 Ref. 7255BH/2Y/9VU다. 브레게 CEO 그레고리 키슬링은 이번 모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브레게 역사상 플라잉 투르비용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르비용 특허 취득 224주년을 기념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재해석한 투르비용 역시 평범한 모델이 아니다. 브레게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투르비용 무브먼트 가운데, 1990년 Ref. 3350으로 공개된 최초의 브레게 투르비용 손목시계에 사용된 바로 그 무브먼트다."




이 시계에는 핸드와인딩 칼리버 187M1이 탑재되어 있으며, 진동수는 18,000vph, 파워 리저브는 약 50시간이다. 케이스백에는 브레게의 역사적 본거지 퀘드올로지(Quai de l’Horloge)를 모티브로 한 기요셰 장식이 더해졌다. 


클래식 투르비용 시데랄 7255 역시 브레게 골드로 제작됐다. 특히 이번 모델에서는 퀘드올로지 기요셰 장식이 처음으로 케이스백과 투르비용 지지대의 원형 패턴에 그치지 않고, 무브먼트 메인 플레이트 전체에 걸쳐 선형 패턴으로 확장 적용됐다. 다이얼 옆면에는 브랜드의 시크릿 시그너처가 더해졌으며 섬세한 케이스 플루팅, 스트레이트 러그, 브레게 핸즈 등 전통적인 브레게 디자인 코드가 조화를 이룬다. 케이스백에는 1/50부터 50/50까지의 개별 번호가 새겨져, 이 모델이 50개 한정판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CHAPTER 5

마린 오라 문디 5555



브레게 마린 오라 문디 5555 Ref. 5555BH/YS/9WV. 기요셰 장식 레이어와 사파이어 레이어를 이중 구조로 겹쳐 완성한 다이얼을 갖췄다. 케이스 지름은 43.9mm이며, 가격은 1억 4300만원대. 전 세계 50개 한정 판매된다. 


지름 43.9mm의 마린 오라 문디 5555 Ref. 5555BH/YS/9WV 역시 50개 한정으로 제작됐다. 이 모델은 두 개의 레이어를 겹친 다이얼 구조가 특징이다. 하부에는 기요셰 장식 다이얼을, 상부에는 사파이어 다이얼을 배치했다. 밤하늘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담은 NASA의 ‘블랙 마블(Black Marble)’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한 50명의 컬렉터 각각은 24개 시간대에 배정되는 도시를 개인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




오라 문디의 사파이어 다이얼은 앞면과 뒷면 모두에서 세 단계에 걸쳐 전부 수작업으로 채색되며, 그랑 푀 기법으로 소성된다. 


사파이어 다이얼은 앞면과 뒷면 모두에서 세 단계에 걸쳐 전부 수작업으로 페인팅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모든 대륙을 미니어처 에나멜로 채색한다. 사파이어 크리스털이 평면 구조이기 때문에, 플랜지에 가까워질수록 대륙의 윤곽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이를 위해 투명한 프티 푀 에나멜을 패드 프린팅 방식으로 윤곽선에 전사한 뒤, 브레게 장인들이 내부를 에나멜로 채워 완성한다. 대륙 표현은 사파이어 크리스털의 뒷면에 미러 이미지를 반전해 그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첫 번째 에나멜 레이어는 매우 높은 온도에서 소성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구름을 표현한 에나멜 페인팅이 더해진다. 이 과정으로 인해 각 오라 문디 5555는 모두 서로 다른 개체가 된다. 이 구름 레이어 역시 그랑 푀 기법으로 소성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에서는 밤에 빛나는 도시들이 표현된다. 이를 위해 브레게는 미니어처 인광 에나멜 페인팅을 선택했으며, 어둠 속에서도 도시의 위치가 또렷이 드러나도록 했다. 전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완성도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듀얼 타임과 낮밤 인디케이터를 갖춘 브레게의 셀프와인딩 칼리버 77F1은 28,800vph로 작동하며, 약 55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이 무브먼트 역시 브레게 골드 케이스에 담겼다. 


마린 오라 문디 5555의 중심에는 칼리버 77F1이 자리한다. 이 견고한 무브먼트는 오라 문디 컬렉션이 탄생한 이래 지속적으로 사용됐으며, 2022년에 77F0에서 77F1으로 진화했다. 그레고리 키슬링은 이렇게 설명한다.

"칼리버 77F0은 워치메이킹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였다. 시계의 작동을 멈추지 않은 채 버튼 하나로 즉각적으로 시간대를 전환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무브먼트였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은 팔로워 캘린더 구조를 기반으로 시간과 날짜를 동시에 전환하고, 낮밤 인디케이터까지 함께 제어한다. 단순함과 정밀함,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이 결합된 성과라 할 수 있다."


CHAPTER 6

클래식 그랑 소네리 1905 & 클래식 미니트 리피터 7365


브레게는 창립 250주년이라는 대단원을 두 가지의 차이밍 워치로 열었다. 250주년의 시작을 매우 단순하고 간결한 시계로 알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레고리 키슬링은 올해 메종의 근본 원칙을 재정립하고 각 기념 모델을 통해 프랑스 파리의 퀘드올로지 공방에서 스위스 발레 드 주 매뉴팩처에 이르는 서사를 촘촘하게 완성했다. 차이밍 워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스트라이킹 메커니즘도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1783년 와이어 형태의 공을 개발하기 전까지, 차이밍 워치는 종(bell)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시간, 쿼터, 분을 두 가지 톤으로 들려주는 '투톤 차임(two-tone chime)' 역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브레게 클래식 그랑 소네리 1905는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현대의 컬렉터에게 어필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브레게 클래식 그랑 소네리 1905

Ref. 1905BH2H

기능 레귤레이터 시·분, 스몰 세컨드, 투르비용, 그랑 소네리, 프티 소네리, 미니트 리피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칼리버 508GS, 18,000vph, 56시간 파워 리저브

케이스 지름 56.5mm, 두께 24.1mm, 브레게 골드, 글라스백


브레게가 창립 250주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차이밍 워치는 포켓 워치와 손목시계 두 가지다. 클래식 그랑 소네리 1905 포켓 워치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초기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연구하던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게 당시 포켓 워치는 여러 신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는 실험대이자,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무대였다. 현대 브레게 역시 소네리와 미니트 리피터, 투르비용, 레귤레이터 디스플레이를 결합하면서 가독성과 미학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과거의 혁신이 공 스프링이라면 여기선 마그네틱 거버너(governor)다. 마그네틱 거버너는 자기장만으로 회전 속도를 제어하므로 완전한 무소음 및 비접촉 방식으로 파워 리저브와 상관없이 일정한 타종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레귤레이터 시와 분, 투르비용, 블루잉 스틸 해머는 다이얼 면에서 볼 수 있다. 시간은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에서 표시하고, 유난히 긴 분침은 퀘드올로지 기요셰 다이얼 위를 가로지른다. 시계를 뒤집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랙과 스네일, 스프링이 정돈된 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 해머가 공을 치기 전 어떤 랙이 움직이고, 스네일이 그 랙을 어떻게 읽고, 스프링이 어느 타이밍을 조절하는지, 시계가 시간을 타종하는 과정을 눈으로 쉽게 따라가볼 수 있다. 모든 구성 요소의 일관된 피니싱은 무브먼트가 기술적 구조만큼 시각적 완성도 역시 치밀하게 설계됐음을 알 수 있다. 상부 브리지의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 기요셰는 복잡성 속 질서를 잡아주는 시각적 방점 역할을 한다. 클래식 그랑 소네리 1905의 커버는 퀘드올로지 공방이 위치한 파리 센 강의 자연섬 일 드 라 시테(Île de la Cité)를 인그레이빙과 에나멜로 담았다. 브레게는 커버 가장자리의 기요셰를 위해 추가 기술까지 개발했다.




브레게 클래식 미니트 리피터 7365의 '블루 드 프랑스(Bleu de France)' 컬러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 파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색조에서 영감을 얻었다. 


브레게 클래식 미니트 리피터 7365

Ref. 7365BH/2Y/986

기능 시·분, 미니트 리피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칼리버 1896, 21,600vph, 75시간 파워 리저브

케이스 지름 39mm, 두께 10.8mm, 브레게 골드, 글라스백


클래식 그랑 소네리 1905가 브레게의 초기 실험 정신을 의미한다면, 클래식 미니트 리피터 7365는 이를 현대적인 손목시계로 재해석했다. 그레고리 키슬링은 "7365는 기술적으로 앞서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착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7365는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에서 시작된 새로운 케이스 실루엣을 지녔고 지름 39mm로 완성됐다. 새롭게 개발된 실링 구조 덕분에 방수는 무려 30m에 이른다. 미니트 리피터 손목시계로는 보기 드문 스펙이다.

7365를 위해 새로운 미니트 리피터 칼리버 1896도 등장했다. 기존 칼리버 567.2를 재조정한 버전이 아니라 동력 효율과 소리 울림 등 여러 면에서 완전히 다시 태어난 무브먼트다.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를 적용해 브레게 홀마크의 기준인 ±2초 이내 일오차를 충족한다. 브레게는 무브먼트 소재까지 브레게 골드로 통일했다. 소리의 완성도를 위해 하나의 변수라도 더 줄이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지름 39mm, 두께 10.8mm의 아담한 사이즈, 30m 방수, 75시간에 이르는 파워 리저브, 항자성, 일반적인 손목시계라면 이해가 가는 스펙이지만 미니트 리피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니트 리피터 손목시계에서 이 같은 디테일이 가리키는 바는 단 하나, 일상에서의 착용 가능성이다.


브레게를 규정하는 정체성은 오히려 더 진해졌다. 글라스백에서 볼 수 있는 무브먼트 브리지에는 과거 퀘드올로지 공방과 현대 스위스 발레 드 주 매뉴팩처의 풍경이 함께 인그레이빙됐다. 두 이미지는 무브먼트 중앙에서 서로 맞물린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브레게의 기원과 스위스에 뿌리 내린 워치메이킹 동력은 지금의 브레게를 이루는 주축이다.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피날레에는 이렇듯 브레게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CHAPTER 7

익스페리멘탈 1

 

1, 2 / 브레게 익스페리멘탈 1과 그 구조.

3 /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가 구동하는 10Hz 투르비용.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는 자기 트랙이 있는 이스케이프 휠이 2층으로 쌓여 있고, 그 사이 자석 달린 팰릿 레버와 인터미디어트 스톱 휠이 위치한 형태다. 인터미디어트 스톱 휠은 팰릿 레버가 움직일 수 있는 최대 범위를 제한하고 충격이나 과도한 자기력 때문에 이스케이프가 튀는 것을 방지한다.


브레게 익스페리멘탈 1

Ref. E001BH/S9/5ZV

기능 레귤레이터 시·분, 스몰 세컨드, 투르비용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칼리버 7250, 72,000vph, 72시간 파워 리저브

케이스 지름 43mm, 두께 13.3mm, 브레게 골드, 100m 방수, 글라스백


브레게는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 250주년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세계 최초로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를 장착한 익스페리멘탈 1을 공개한 것이다. 익스페리멘탈 1은 정밀하게 제어된 자기력(magnetism)을 통해 10Hz의 초고진동 투르비용을 구현하며, 정확도는 일오차 ±1초에 이른다.


익스페리멘탈 1의 의미는 새로운 브레게 R&D 첨병에만 있지 않다. 익스페리멘탈 1은 250주년의 역사 다음에 펼쳐질 미래를 예고하는 첫 장과 같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게 워치메이킹은 곧 혁신이었다. 지금도 기계식 시계는 어느 정도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기계식 시계는 필수적인 계측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물건이 됐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혁신은 여전히 필요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혁신은 쉽지 않았다. 핵심 없는 혁신은 결코 감정을 움직이지 못한다. 수많은 혁신이 외면당한 이유다.


그레고리 키슬링은 다시 창립자의 마음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게 '미래 시계'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발명가 정신을 재점화하는 시계였다. 예나 지금이나 브레게의 본질은 동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창립 250주년의 핵심 메시지도 여기서 비롯됐다. 브레게는 '혁신 재정비'라는 브랜드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창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작품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가 GPHG 2025 최고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익스페리멘탈 1은 변화를 상징하는 결정적 작품으로 포지셔닝했다. 창립 250주년의 마지막 이벤트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것도 익스페리멘탈 1의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


 

브레게는 2013년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과 7225를 통해 마그네틱 피벗을 성공시킨 바 있다. 정밀하게 제어된 자기력을 사용하면, 포지션별 오차가 거의 없고 충격에 강하며 마찰도 감소하는 등 기계식 시계 성능에 우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익스페리멘탈 1에 사용된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는 기계식 메커니즘의 판 자체를 완전히 재설정해버렸다. 전통적인 스위스 레버 방식 이스케이프먼트에서 밸런스 휠이 왕복 진동을 유지하려면 이스케이프먼트가 순간적인 힘으로 밸런스 휠을 밀어줘야 한다. 이걸 '임펄스 impulse)'라고 부른다. 그네를 타는 아이를 밀어주는 힘에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그네가 계속 일정하고 안정적으로 흔들리려면 매번 똑같은 힘으로 밀어줘야 한다. 하지만 이스케이프 휠의 회전 속도나 기어트레인의 저항, 투르비용 케이지의 관성 변화는 밸런스에 영향을 미친다. 시계가 충격을 받거나, 파워 리저브가 감소하거나, 부품이 마모되면 임펄스가 불규칙해진다.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는 자기력으로 밸런스에 임펄스를 전달한다. 임펄스는 움직이는 기계 부품들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다. 부품들의 상태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기어 트레인이 무거워져도, 투르비용 케이지가 충격을 받아도, 파워 리저브가 줄어 토크가 약해져도 자기력 임펄스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놀랍다. 밸런스의 진폭은 안정성이 극대화된 채 유지되고, 자세 변화에 따른 오차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충격에 대한 내성 또한 크게 향상되었으며, 파워 리저브가 감소하는 후반부에도 정확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72,000vph에 이르는 10Hz 초고진동 투르비용을 가능케 한 열쇠도 마그네틱 이스케이프먼트다. 초고진동 환경에서도 마모를 최소화하며 장시간 안정적인 작동을 보장한다. 익스페리멘탈 1의 일오차는 -1/+1초 이내다. 브레게 홀마크 '사이언티픽' 인증이 증명한다.

익스페리멘탈 1이 프로토타입이 아니라는 점도 놀랍다. 75개 한정으로 제작됐지만 공식 판매 제품이며, 가격대는 32만 스위스프랑(약 5억원)으로 책정됐다. 마린 컬렉션의 기조를 한 단계 끌어올린 아방가르드 디자인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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