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페 1839는 전통과 실험적 시도가 공존하는 독보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존 메커니컬 오브제에 없었던 동적 요소와 생물학적 특징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벨리 탱크 레이서
레페 1839의 신작 벨리 탱크 레이서는 제2차 세계대전시 전투기 아래 장착되던 연료탱크, 이른바 드롭 탱크(Drop Tank) 혹은 벨리 탱크(Belly Tank)에서 출발한 메커니컬 오브제다. 이 물방울 모양의 유선형 알루미늄 탱크는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고, 5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무장과 연료탱크를 전부 내부로 수납하기 전까지 활약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처치 곤란한 군용품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파일럿이나 비행기 정비사 출신의 핫 로더(Hot Rodder)들에게는 공기역학적으로 몹시 빼어난 레이스카의 차체로 어필했다.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벨리 탱크 레이서는 캘리포니아의 말라버린 호수와 유타의 소금 평원에서 시속 200마일(약 322 km/h) 이상의 광적인 속도를 기록했다. 오직 속도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한 순수한 기계적 결정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자이너 에릭 메이어(Eric Meyer)의 손길을 거친 레페 1839의 벨리 탱크 레이서는 원형이 지닌 특유의 물방울 실루엣을 충실히 따른다. 길이 420mm, 무게 5.4kg에 달하는 매끈하고 묵직한 차체는 원형과 마찬가지로 알루미늄으로 제작됐다. 뒤로 팽팽하게 당겨진 듯한 낮은 실루엣에서는 당장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 듯한 역동성이 느껴진다.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과 무브먼트의 구조는 벨리 탱크 레이서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독립적인 다이얼 대신에 시, 분을 나타내는 두 개의 투명한 회전 드럼이 차체 중앙을 감싸듯 매끄럽게 통합되어 있다. 투명한 드럼 너머로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휠과 기어의 움직임을 감상할 수 있다. 기계식 시계의 심장인 이스케이프먼트는 차체의 맨 앞부분인 투명 노즈(Nose)에 배치했다. 가장 동적인 부품이자 핵심 부품을 최전면에 노출하자 벨리 탱크 레이서의 속도감과 방향성이 더욱 증폭되는 효과가 더해졌다.
벨리 탱크 레이서엔 레페 1839가 자체 제작한 인하우스 핸드와인딩 칼리버가 탑재된다. 18,000vph의 느긋한 진동수와 8일간의 넉넉한 파워 리저브를 갖췄으며, 여느 레페 1839의 칼리버들처럼 잉카블록(Incabloc) 충격 보호 장치가 밸런스 휠을 호위한다. 벨리 탱크 레이서의 독특한 와인딩 방식을 보면 잉카블록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진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풀백(Pull-back) 장난감 자동차처럼 차체를 뒤로 끌어 뒷바퀴를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태엽을 감기 때문이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위치를 바꾸지 않는 탁상용 메커니컬 오브제와 달리, 직접 차체를 굴리는 꽤나 역동적인 행위를 동반하기에 충격 보호 장치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벨리 탱크 레이서는 전후 미국의 광적인 스피드 문화와 항공 유산을 하이엔드 클락메이킹으로 풀어낸 메커니컬 오브제다. 형태의 기원부터 무브먼트, 작동 방식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테마 아래 치밀하게 맞물렸다. 그 완성도까지 감상하는 것이 레페 1839 메커니컬 오브제의 묘미다.
게코
게코(The Gekko)는 도마뱀붙이(Gecko)가 벽과 천장에 달라붙는 능력을 클락의 배치 방식에 직접 반영했다. 2015년 MB&F와 협업한 아라크노포비아(Arachnophobia)의 키네틱 스컬프처 개념을 발전시켜, 벽에 걸 수도 있고 테이블 위에 둘 수도 있는 하이브리드 구조다. 특히 벽에 거는 월 클락 방식으로 사용할 때는 10가지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머리를 기준으로 위, 아래, 옆 등 다양한 방향으로 배치해 게코가 벽을 기어오르거나 쉬는 듯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이때 다이얼은 12시 방향이 위를 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포지션과 상관없이 명확한 가독성을 확보했다.

게코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꼬리다. 꼬리를 좌우로 움직이면 태엽을 감을 수 있다. 실제 도마뱀붙이의 꼬리가 에너지 저장과 생존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머리에 배치된 밸런스 휠의 위치는 논리적이다. 머리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스켈레톤 칼리버는 부품이 노출되어 빛이 투과했을 때 조형미가 일품이다. 내부 구조를 보면 살아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여기에 더해 게코의 몸통, 다리와 꼬리의 피니싱에도 공을 들였다. 고급 손목시계와 동등한 수준의 기법을 사용해 표면 질감을 강조하고 완성도를 극대화했다. 게코는 벽을 타는 도마뱀붙이의 생태를 메커니컬 오브제로 재현했지만, 사용자와 같은 공간 속에서 교감한다는 점에서 기계식 생명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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