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팡 그랑 더블 소네리

블랑팡은 지난해 말 창립 290주년을 맞아 특별한 시계 그랑 더블 소네리를 공개했다. 블랑팡 회장이자 CEO 마크. A. 하이예크의 진두지휘 아래, 탄생과 동시에 메종 역사상 가장 복잡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자 두 가지 멜로디를 내는 최초의 손목시계형 그랑 소네리라는 괄목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 2026.01.12

    2026.01.14

  • By 유현선

 



마크. A. 하이예크의 꿈 

"블랑팡 시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기능이 있을 것." 블랑팡 회장 겸 CEO 마크. A. 하이예크는 작년 <크로노스>와의 인터뷰에서 창립 290주년을 기념하는 시계를 예고하며 이 같은 말을 남겼다.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단 하나의 나사조차 이전과 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별도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며, "1735년 창립 이래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블랑팡 시계"라 단언하기도 했다. 단어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의 규모와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무브먼트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솔리드 골드로 제작됐다. 피니싱은 최고 수준이다. 블랑팡 하이엔드 시계만 전담하는 르 브라쉬 매뉴팩처에서 맡았다. 모든 부품은 앵글라주, 페를라주, 미러 폴리싱, 스트레이트 그레인 기법 등으로 사용하여 꼼꼼하게 수작업 마감됐다. 특히 앵글라주는 수작업으로만 가능한 135도의 내각에도 꼼꼼하게 반영됐다. 


1 / 9시 방향의 슬라이드를 통해 프티 소네리, 그랑 소네리, 그리고 무음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푸셔를 누르면 미니트 리피터가 활성화돼 시간을 알려준다. 다양한 모드는 다이얼의 인디케이터를 통해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W는 웨스트민스터 차임, B는 블랑팡 멜로디를 나타낸다.

2 / 블랑팡의 시그너처 언더 러그 코렉터. 별도 도구 없이도 캘린더 기능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획기적인 물리 버튼이다. 케이스 내부의 음향 멤브레인이 장착되면서, 코렉터와 리턴 스프링은 무브먼트 내부에 직접 통합됐다.


그리고 지난 11월, 마침내 그 베일이 벗겨졌다. 두 가지 멜로디의 그랑 소네리, 프티 소네리, 미니트 리피터, 플라잉 투르비용, 퍼페추얼 캘린더가 결합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자 기술 도면 1,200장, 21개의 특허, 전체 부품 수 1,116개로 빚어낸 블랑팡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 그랑 더블 소네리 Ref. 15GSQ다. 마크. A. 하이예크는 지난 11월 17일, 스위스 르 브라쉬 매뉴팩처에서 그랑 더블 소네리를 공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국가별로 취재진을 별도로 초청해 소규모로 브리핑을 열었고, 직접 시계에 대해 설명했다. 전 세계 취재진을 한날한시에 모아 개최하는 단체 프레젠테이션과 사뭇 달랐다. 인원이 적으니 시간의 밀도는 더욱 높았다. 


블랑팡 르 브라쉬 하이엔드 공방의 워치메이커들은 앵글라주 피니싱을 위해 겐티안 나무의 가지로 직접 폴리싱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나무줄기의 섬유질이 금속 베벨 부분을 매끄럽고 광택 있게 마무리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겐티안 나무는 르 브라쉬 공방 주변에 자생한다.


특수한 부품부터 레이저 튜닝까지, 직접 설계, 제작, 조립을 맡은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워치메이킹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수작업 비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이었다. 기계가 닿지 않는 부분을 각을 살려 폴리싱하는 것도, 톱니를 마이크론 단위로 다듬는 것도 워치메이커들이었다.


멜로디로 울리는 시간 


워치메이커가 그랑 더블 소네리 칼리버 15GSQ에 장착될 공 스프링을 살펴보고 있다. 공의 단면은 사각형이다. 공 4개 구조에서 정밀한 피치(pitch), 안정적 진동, 상호 공진 억제, 음색(partials) 제어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블랑팡이 반복 실험으로 얻은 음향공학적 최적 설계의 결과물이다.


그랑 더블 소네리는 "시간을 멜로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두 개의 음으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그랑 소네리와 달리, 그랑 더블 소네리는 미(E), 파(F), 솔(G), 시(B)의 네 음으로 이뤄진 '멜로디'를 울린다. 음이 4개면 공과 해머도 각각 4개씩 필요하다. 기존 투톤(two-tones) 구조에서는 각 음의 주파수나 음정 관계에 어느 정도 유연성이 있었지만 멜로디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음이 정확한 소리와 템포로 연주돼야 한다. 공의 모양, 조정, 그리고 장착이 모두 정밀해야 한다. 공의 소재는 브론즈, 코퍼, 벌크 메탈릭 글라스 등 다양한 합금을 실험한 끝에 로즈 골드가 채택됐다. 음의 정확성과 지속성은 물론, 멜로디의 화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각 공의 단면은 사각형이지만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덕분에 튜닝도 효율적으로 진행됐다. 튜닝 방법으로 비접촉식 광학 계측, 즉 레이저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블랑팡 워치메이커들은 레이저를 사용해 공이 진동할 때의 미세한 움직임을 고속으로 포착하고, 그 진동 주기를 계산해 정확한 주파수를 산출한다. 비접촉식 광학 계측은 네 개의 공이 생성하는 각 음이 목표 주파수에 정확히 맞는지 확인하고, 미세 조정이 필요한 영역을 마이크론 단위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블랑팡은 음표 설정 특허를 출원했다.



그랑 더블 소네리는 2가지 멜로디를 울린다. 대부분의 그랑 소네리가 정시에 시간만을 울리는 반면, 그랑 더블 소네리는 시간을 울린 후 네 개의 쿼터를 모두 연주하며 완전한 멜로디를 선사한다. 


이름이 그랑 더블 소네리인 까닭은 무엇일까. 시계는 두 가지 멜로디를 울린다. 클래식한 웨스트민스터 차임과 블랑팡 오리지널 멜로디다. 사용자는 버튼 하나로 멜로디를 선택할 수 있다. 두 가지 멜로디는 그랑 소네리 손목시계 역사상 처음이다. 웨스트민스터 차임은 18세기 말 탄생한 가장 오래된 표준 시보 멜로디 중 하나로, 우리에겐 수업 종소리 등으로 이미 익숙하다. 



블랑팡 회장 겸 CEO 마크. A. 하이예크와 록밴드 ‘KISS’의 드러머 에릭 싱어. 


블랑팡 오리지널 멜로디는 좀 더 특별하다. 록 밴드 'KISS'의 드러머이자 시계 애호가 에릭 싱어(Eric Singer)가 작곡했다. 마크. A. 하이예크가 바젤월드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에릭 싱어에게 직접 의뢰했다. 그는 친구이자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키보디스트 데릭 셰리니언(Derek Sherinian)과 함께 네 개의 음으로 이뤄진 멜로디를 여러 개 만들었고, 마크. A. 하이예크가 최종적으로 블랑팡 오리지널 멜로디를 골랐다. 에릭 싱어는 "음악가로서 단지 네 개의 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제약이었다"며, "그 한계를 멜로디로 바꿔내는 과정이야말로 도전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가지 멜로디를 담았을까.


 

직관적인 해답을 찾았다. 두 개의 쿼터 랙을 서로 겹쳐 배치했다. 쿼터 랙은 정확한 박자에 맞춰 해머를 연결하는 회전 메커니즘이다. 쿼터 랙에 달린 작은 톱니들이 네 개의 해머 중 하나를 장전하고 해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쿼터 랙에는 웨스트민스터 차임의 멜로디가, 다른 쿼터 랙에는 블랑팡 오리지널 멜로디가 담겼다. 마스터 워치메이커는 쿼터 랙의 톱니를 1마이크론 단위로 미세하게 조정해 오차 0.1초 내의 완벽한 템포를 실현했다. 쿼터 랙을 변경하는 일은 칼럼 휠이 맡는다. 푸셔를 누르면 매우 부드럽고 정제된 조작감이 느껴진다.


볼륨을 높이는 법

정확한 음과 템포를 완성했다면 다음 차례는 음향이었다. 멜로디는 최대한 크고 선명하게 울려야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속속 등장했다. 마그네틱 레귤레이터(거버너)와 음향 멤브레인이 대표적이다. 레귤레이터는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에 동력을 일정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자기 저항 방식을 사용하므로 2000rpm의 속도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적고, 기존 레귤레이터보다 에너지 효율이 최대 50% 더 높다.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이 쿼터(15분)를 울릴 필요가 없을 때 생기는 침묵 구간인 '팬텀 쿼터(Phantom Quarter)'까지 해결했다.


칼리버 15GSQ


글라스백의 인디케이터를 통해 파워 리저브 잔량을 확인할 수 있다.


블랑팡은 그랑 더블 소네리를 위해 전적으로 새로운 칼리버 15GSQ를 개발했다. 이 핸드와인딩 무브먼트는 무려 1053개 부품으로 이뤄졌으며 21개 특허 중 13개가 통합됐다. 모든 부품은 전적으로 블랑팡에서 설계, 제작, 조립, 장식됐다. 배럴은 두 개 중 하나는 시간에, 다른 하나는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에 할당됐다. 파워 리저브는 96시간으로, 그랑 소네리 모드에서는 12시간 동안 동작한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무브먼트 가장자리를 따라 표시되도록 완전히 통합 설계됐다. 날짜는 무브먼트의 왼쪽에, 요일, 월, 윤년은 오른쪽 두 개의 서브 다이얼에 나뉘어 배치했다. 다이얼에서 보이는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의 구조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다. 날짜를 가리키는 블랑팡 시그너처 세르펜트 핸드는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1로 돌아오는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이다. 다이얼에서 보이는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의 구조를 가리지 않으면서, 블랑팡 특유의 포인터 데이트까지 구현해냈다. 캘린더를 도구 없이 조정할 수 있는 언더 러그 코렉터도 놓치지 않았다. 케이스 내부의 음향 멤브레인이 장착되면서, 코렉터와 리턴 스프링은 무브먼트 내부에 직접 통합돼야 했다.

블랑팡에선 이례적으로 7시 방향에 놓인 플라잉 투르비용의 위치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제 플라잉 투르비용은 28,800vph로 진동한다. 실리콘 소재로 제작된 밸런스 스프링은 자성에 대한 저항성과 함께 더 가벼운 무게, 이상적인 기하 구조, 그리고 메인스프링 장력 변화에도 일정한 진폭을 유지한다.


진정한 의미의 손목시계

"오너가 매일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그랑 소네리를 만들고자 했다." 마크. A. 하이예크는 브리핑에서 그랑 더블 소네리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했다. 칼리버 15GSQ의 설계부터 그렇다. 모든 메커니즘을 다이얼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푸셔와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 플라잉 투르비용은 일반적인 기계식 손목시계의 진동수로 박동한다. 지름 47mm, 두께 14.5mm, 러그 투 러그 54.6mm의 케이스는 손목 위에서 놀랄 정도로 안정적인 밸런스를 자랑한다. 방수도 10m를 달성했다. 보통 차이밍 워치는 방수 자체가 불가능하다.

크라운이나 코렉터 조작으로 인한 무브먼트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 장치도 마련됐다. 예를 들어 크라운을 당겨 시간을 조정하는 동안엔 차임벨 인디케이터가 꺼지고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차이밍 파워 리저브가 소진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차이밍이 동작 중인 경우에도 시간을 조정할 수 없다. 모두 일상에서의 사용이 전제된 조건이다. 그랑 더블 소네리는 금고 속에 보관해야 하는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시계인 것이다.


마크. A. 하이예크는 소네리의 울림을 감상하는 순간을 "훌륭한 와인을 음미하는 순간"에 비유했다. 음향과 음정을 실제에 가장 가깝게 조율하고 충분한 음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공정을 거쳤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맑음과 공명, 여운, 깊이로 이어지는 소리의 본질이었다.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다듬어진 음색이지만, 이를 감상하는 경험은 이성보다 감성의 영역에 더 가깝다.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는 순간과도 흡사하다. 그는 "이 시계가 진정한 애호가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기를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그랑 더블 소네리의 가치는 그 울림에 있었다. 오픈 구조 속의 정교한 메커니즘, 네 개의 해머가 울리는 멜로디, 13개의 특허를 담은 골드 무브먼트, 최상의 마감을 넘어.




블랑팡 그랑 더블 소네리는 특별히 제작된 공명 박스와 함께 제공된다. 이 박스는 블랑팡이 위치한 스위스 발레 드 주의 리주(Risoud) 숲에서 얻은 목재로 제작됐다. 바이올린을 만들 때에도 사용되는 목재다. 박스의 떠 있는 듯한 플로팅 보드는 시계의 울림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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