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미지아니가 다시 한번 절제의 끝을 보여준다. ‘미스테리외(Mystérieux)’라는 이름의 크로노그래프는 사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플러리에의 매뉴팩처가 GMT 라트라팡테와 미니트 라트라팡테에 이어 또 하나의 독창적인 컴플리케이션을 완성했다.

귀도 테레니(Guido Terreni)가 CEO를 맡은 지난 5년 반 동안,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고급 시계 분야에서 가장 흥미로운 니치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 변화의 바탕에는 극단적인 절제와 전통적인 장인 기술, 예상치 못한 컴플리케이션이 있다. 각각의 디테일을 치밀하게 다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요소가 서로 맞물려 하나의 완성된 인상을 만든다.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 섬세한 세련미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테스트한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Tonda PF Chronographe Mystérieux)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시계는 2021년 중반 등장한 톤다 PF 컬렉션에 속한다. 톤다 PF를 대표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다이얼을 장식하는 수작업 마이크로 기요셰, 가느다란 홈을 촘촘하게 새긴 베젤, 그리고 일체형(통합형) 브레이슬릿이다. 특히 스틸 모델에도 베젤만큼은 플래티넘을 사용한다. 다이얼의 기요셰를 최대한 가리지 않기 위해 핸즈는 스켈레톤 처리하고 아플리케 아워 인덱스의 길이도 줄였다. 2021년부터 긴 브랜드명을 대신해 사용하는 작은 타원형 로고 역시 톤다 PF 특유의 절제된 인상을 완성한다. 첫 모델인 톤다 PF 마이크로 로터에 이어 크로노그래프와 플라잉 투르비용, 애뉴얼 캘린더 등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도 추가됐다. 그러나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2022년 등장한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였다. 여기서 라트라팡테는 일반적인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를 뜻하지 않는다. 프랑스어 즉 ‘따라잡다(rattraper)’라는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평상시 GMT 핸드는 일반 아워 핸드 아래에 완전히 숨어 있다.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며 두 번째 시간대를 표시하고, 다시 버튼을 누르면 원래 위치로 돌아가 자취를 감춘다.
이듬해 등장한 톤다 PF 미니트 라트라팡테 역시 같은 발상에서 출발했다. 형태가 동일한 두 개의 미니트 핸드가 겹쳐 있으며, 평소 보이지 않던 아래쪽 핸드를 푸셔로 앞뒤로 이동시켜 특정 시점을 표시한다. 일반 미니트 핸드가 그 지점까지 움직여 ‘따라잡으면’ 역할이 끝난다. 버튼을 누르면 다시 두 핸드가 하나로 겹쳐진다.

골드 핸드는 현재 시각을, 로듐 도금 핸드는 경과 시간을 표시한다. 현재 시각은 9시 18분, 크로노그래프의 계측 시간은 7시간 7분 52초다.
서브 다이얼 없는 크로노그래프
파르미지아니는 2026년 이 아이디어를 크로노그래프에 적용했다. 그 결과물이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다. GMT 라트라팡테와 미니트 라트라팡테처럼 부가 기능을 담당하는 핸드는 평상시 완전히 숨겨져 있다. 크로노그래프를 작동하지 않을 때 시계는 평범한 스리 핸즈 워치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중앙축에 다섯 개의 핸드가 겹쳐 있지만 육안으로는 세 개만 보인다.
크로노그래프 푸셔도 하나뿐이다. 8시 방향에 자리한 푸셔는 케이스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모노푸셔 방식이므로 한 번 누를 때마다 스타트, 스톱, 리셋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중간에 다시 계측을 이어가는 누적 계측은 불가능하다.
스펙
PARMIGIANI FLEURIER Tonda PF Chronographe Mystérieux
파르미지아니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
제조사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 SA, Rue du Temple 11, 2114 플러리에, 스위스
레퍼런스 PFC917-2020001-100182
기능
시, 분, 중앙 초침, 초·분·시간을 중앙 핸드로 표시하는 크로노그래프, 스톱 세컨즈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폴리시드 및 새틴 마감
플래티넘 950 소재의 플루티드 베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양면 무색 반사 방지 처리
4개의 스크루로 고정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
100m 방수
다이얼
수작업 기요셰로 완성한 보리알 패턴, 미네랄 블루(Mineral Blue), 18K 골드 아워 인덱스, 로듐 도금 및 수작업 아플리케, 로듐 도금 골드 아워, 미니트 핸드, 로즈 골드 크로노그래프 핸드, 로듐 도금, 스테인리스 스틸 세컨즈 핸드
사이즈
지름 40mm , 두께 13mm, 러그 투 러그 45mm, 러그 폭 22.1mm, 무게 159g
무브먼트
칼리버 PF053, 셀프와인딩
지름 32.4mm, 두께 6.8mm, 60시간 파워 리저브, 22K 로즈 골드 회전추, 스켈레톤, 폴리시드, 샌드블래스트 마감, 새틴 마감, 오픈워크 및 앙글라주 처리한 브리지, 진동수 28,800vph(4Hz)
브레이슬릿 및 클래스프
스테인리스 스틸, 폴리시드 및 새틴 마감, 스테인리스 스틸 더블 폴딩 클래스프
정확도 테스트
최대 자세차(Delta)....................8초
평균 오차................-1초 / 24시간
손목 착용 시..........-5초 / 24시간
가격 4만 1700유로(약 6780만원)
장점
+ 독창적인 기능
+ 뛰어난 디자인
+ 절제된 우아함
+ 넉넉한 파워 리저브
+ 정교한 플래티넘 베젤
단점
- 크로노그래프 정지 후 세컨즈 핸드가
- 현재 시각의 초 위치로 돌아가지 않음
- 눈에 띄는 지연
세 개에서 다섯 개로
크로노그래프를 작동하는 순간 시계의 모습이 달라진다. 초, 분, 시간을 계측하는 세 개의 로듐 도금 핸드가 일제히 제로 포지션으로 이동한 뒤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세컨즈 핸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과 시간을 기록하는 나머지 두 핸드도 훨씬 느린 속도로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평소 로듐 도금 핸드 아래에 숨어 있던 로즈 골드 아워 핸드와 미니트 핸드가 모습을 드러내 현재 시각을 계속 표시한다.
푸셔를 다시 누르면 계측이 멈추고 세 개의 로듐 도금 핸드 역시 정지한다. 한 번 더 누르면 로듐 도금 아워 핸드와 미니트 핸드가 각각 로즈 골드 핸드가 있는 현재 시각으로 점프한 뒤 그 위에 다시 겹쳐진다. 이후 두 쌍의 핸드는 서로 동기화돼 움직이며 다시 평범한 스리 핸즈 워치처럼 보인다.
완벽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계측을 끝낸 뒤 크로노그래프 세컨즈 핸드는 실제 현재 시각의 초 위치로 돌아가지 않고, 앞서 계측을 멈춘 자리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를 현재 시각과 자동으로 재동기화하려면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비용도 크게 상승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며칠 동안 여러 차례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한 뒤 기준 시각과 시계를 정확하게 맞추려면 세컨즈 핸드가 아니라 미니트 핸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테스트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실착 오차를 측정했다. 24시간 착용 후 결과는 -5초였다. 비치(Witschi) 타이밍 머신에서는 평균 -7초로 조금 더 큰 지연을 기록했다. 다만 자세에 따른 편차가 비교적 일정해, 시계 제작자가 약간 빠르게 가도록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 개의 클러치가 움직이는 PF053
이 시계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셀프와인딩 방식의 인하우스 칼리버 PF053이다. 크로노그래프와 핸드가 서로 따라잡는 일련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1개의 수직 클러치와 2개의 수평 클러치로 구성한 트리플 클러치 시스템을 사용했다. 스타트와 스톱, 리셋을 차례로 제어하는 것은 전통적인 칼럼 휠이다. 다이얼을 기준으로 10시 방향에 위치한다.
메커니즘의 복잡성은 41개의 주얼이라는 숫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스켈레톤 처리한 무브먼트는 여러 층으로 구성된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브리지에는 수직 방향의 브러시드 마감을 적용하고 에지를 앙글라주 처리했으며, 메인 플레이트에는 페를라주를 더했다.
장식은 섬세하지만 과하지 않다. 블루 스크루나 블루 칼럼 휠처럼 시선을 강하게 끄는 요소도 배제했다. 대신 서로 다른 금속의 색조가 만들어내는 차분한 투톤 구성이 돋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켈레톤 로터다. 로터에는 두 종류의 브랜드 표시를 넣었다. 중앙에는 역시 스켈레톤 처리한 파르미지아니의 타원형 로고가 자리하며, ‘Parmigiani’ 레터링은 새틴 마감한 표면 위에서 양각으로 솟아오르게 가공한 뒤 폴리시드 마감했다.

HANDS-ON ‘미네랄 블루’ 다이얼은 파르미지아니의 다른 컬러와 마찬가지로 르 코르뷔지에의 컬러 팔레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블루 톤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손목 위에서 드러나는 절제된 우아함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는 착용감이 뛰어나다. 동시에 한 번 손목에 올리고 나면 쉽게 내려놓고 싶지 않을 만큼 우아하다. ‘미네랄 블루(Mineral Blue)’라 부르는 다이얼 컬러는 파르미지아니의 다른 컬러와 마찬가지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유명한 컬러 팔레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색조가 끊임없이 달라진다. 밝은 곳에서는 수작업 기요셰로 완성한 보리알 패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반대로 그늘에서는 무늬가 한층 희미해지고 블루 컬러가 어두워지면서 거의 매트한 표면처럼 보인다. 전혀 다른 두 모습 모두 매력적이다.
다만 다섯 개의 중앙 핸드를 겹쳐놓은 구조에는 가독성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빛의 방향에 따라 로즈 골드 핸드와 로듐 도금 핸드가 빠르게 구분되지 않아 현재 시각과 크로노그래프 계측값을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외관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플래티넘 베젤에 새긴 225개의 가느다란 플루트다. 계단식 아워 인덱스 역시 핸즈와 로고처럼 하이 폴리시드 마감했다. 일체형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은 러그 쪽 22.1mm에서 클래스프 방향 19.5mm까지 점차 가늘어진다. 이 모든 요소가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 특유의 절제되고 우아한 인상을 완성한다.
조용히 갈망하게 만드는 시계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는 익숙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구현한 시계다. 기술적으로 복잡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과시하지 않는다. 디자인 역시 절제돼 있지만 분명한 개성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이 시계는 화려한 효과보다 메커니즘과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애호가들이 오래 바라보게 될 만하다. 콘셉트와 디자인, 기능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았고 각각의 요소가 높은 수준에서 맞물린다. 가격은 4만 1700유로(약 6780만원). 기술적 독창성과 완성도를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테스트 결과
브레이슬릿과 클래스프(최대 10)..........10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 최고급 통합형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 브랜드 로고를 클래스프에 영리하게 결합했다.
케이스(10)..........10
완성도가 매우 높은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케이스 측면의 수직 새틴 마감이 브레이슬릿 링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플래티넘 베젤의 섬세한 플루팅은 시계의 세련미를 한층 강조한다.
다이얼과 핸즈(10)..........10
흠잡을 데 없는 수작업 기요셰. 짧은 인덱스와 스켈레톤 핸즈 덕분에 기요셰 패턴이 넓게 드러난다. 시각 표시 핸드와 크로노그래프 핸드를 완벽하게 동기화한 방식도 탁월하다.
디자인(15)..........15
파르미지아니는 기요셰, 플루티드 베젤, 물방울 형태의 러그와 푸셔 등 전통적인 워치메이킹 요소를 현대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구현했다. 덕분에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가독성(5)..........3
빛의 방향에 따라 골드 핸드와 로듐 도금 핸드를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종료한 뒤에는 세컨즈 핸드가 실제 시각의 초 위치와 일치하지 않는다. 야간에는 발광하지 않는다.
조작성(5)..........5
클래스프와 푸셔, 크라운 모두 편리하고 문제없이 조작할 수 있다.
착용감(5)..........5
소재와 클래스프, 전체적인 무게 균형이 매우 뛰어나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으며 손목에도 안정적으로 밀착된다.
무브먼트(20)..........18
독창적인 기능을 갖춘 혁신적인 인하우스 무브먼트. 마감 역시 매우 정교하다.
정확도(10)..........5
눈에 띄는 지연이 나타나지만 거의 모든 자세에서 편차가 일정해 워치메이커가 조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진폭과 비트 에러 역시 양호하다.
가격 대비 가치(10)..........9
혁신적인 기술과 일관성 있게 완성한 뛰어난 디자인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다.
크로노스 평가 90점
대안 모델

에르메스 아쏘 르 땅 서스팡뒤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는 콘셉트와 구현 방식이 워낙 독창적이어서 직접 비교할 만한 모델을 찾기 어렵다. 다만 정교한 메커니즘과 우아한 디자인에 독특한 시간 표시 기능을 결합했다는 점에서는 에르메스 아쏘 르 땅 서스팡뒤를 떠올릴 수 있다. 9시 방향의 푸셔를 누르면 현재 시각 표시가 멈추고, 아워 핸드와 미니트 핸드가 나란히 12시 방향으로 이동해 정지한다. 다시 푸셔를 누르면 두 핸드는 곧바로 실제 현재 시각으로 점프한다. 시간 표시를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다시 드러낸다는 점에서 파르미지아니와는 은근한 공통점을 지닌다. 지름 42mm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스켈레톤 다이얼, 에르메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H1837을 탑재했으며 가격대 역시 비슷하다.
가격 4만 250유로(약 6550만원)
게재호
106호(09/10월호)
글
뤼디거 부허(Rüdiger Bucher)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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