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루이 비통의 역사이자,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시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트래블 컴플리케이션을 재정의한 에스칼 워치부터 시간의 역사에서 가져온 땅부르 컨버전스 기요셰까지, 지금 소개하는 모든 시계가 루이 비통의 여정과 맞닿아 있다.

루이 비통 땅부르
컨버전스 기요셰.

루이 비통 에스칼 월드타임.
기항지로 돌아온 에스칼 워치
올해 루이 비통이 선보인 에스칼 월드타임과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은
지난해 전면적인 재정비를 거친 2세대 에스칼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다.
2014년 출발한 1세대 에스칼과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은 무브먼트다. 1세대가 ETA를 비롯한 범용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능을
전개했다면, 현재의 에스칼은 루이 비통의 시계 생산 거점인 라 파브리끄 뒤 떵 루이 비통(La Fabrique du Temps Louis Vuitton)에서 개발하고 완성한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중심에
둔다.
2세대 에스칼 오토매틱에 장착된 무브먼트는 셀프와인딩 칼리버 LFT023이다. 제네바 천문대 크로노미터 인증(Observatoire
Chronométrique de Genève)을 획득했으며, 정확성뿐 아니라 방수 성능(ISO 22810), 내자성(ISO 764), 파워 리저브까지 검증받는다. 정확성 테스트에는 실제 착용 환경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에스칼이
단지 외형을 다듬은 컬렉션이 아니라, 루이 비통 워치메이킹의 기술적 기준을 끌어올리는 플랫폼으로 다시
설계됐음을 보여준다. 이후 에스칼은 땅부르와 함께 루이 비통 워치메이킹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았다.

에스칼 월드타임 도시 링의 픽토그램은 루이 비통의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 라 파브리끄 데 자르에서 맡는다.
외장은 루이 비통의 트렁크 코드를 직접적으로 끌어왔다. 러그와 케이스 측면을 감싸는 브래킷 형태, 리벳 장식, 모노그램 패턴을 새긴 팔각형 크라운이 대표적이다. 트렁크의 금속
부속을 연상시키는 이 디테일들은 에스칼을 다른 드레스 워치와 효과적으로 구분해준다. 2세대 에스칼의
변화는 외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케이스 구조, 무브먼트, 인증 기준, 컬렉션의 방향까지 전반적인 재정비가 이뤄졌다.
2세대의 문을 연 에스칼 오토매틱은 시·분·초만 갖춘 타임 온리 모델이다.
성격상 스포츠 워치의 실용성을 더한 드레스 워치에 가깝다. 여행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일상에서
폭넓게 착용할 수 있는 기본형으로 컬렉션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맡았다. 반면 올해 공개한 에스칼 월드타임과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 그리고 에스칼 트윈 타임은 방향이 분명하다. 월드타임과 듀얼타임이라는 기능을 통해 에스칼은 다시 여행자의 시계라는 이름값을 되찾았다. 프랑스어로 ‘기항지’를 뜻하는 에스칼이라는 이름에도 가장 잘 맞는 전개다.
에스칼 월드타임
월드타이머의 매력은 명확하다.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시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이 기능은 자연스럽게 독특한 다이얼 구성을 낳았고, 월드타이머라는 장르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굳어졌다. 그만큼
변주는 까다롭다. 도시 링, 24시간 링, 낮과 밤의 구분, 로컬 타임 표시라는 기본 조건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은 2014년 에스칼 월드타임으로
에스칼 컬렉션을 시작했다. 브랜드가 오랫동안 다뤄온 여행이라는 테마를 시계 기능으로 구현하기에 월드타이머만큼
매력적인 장치는 없었다. 전 세계를 24개 타임존으로 나눈
도시 디스크와 컬러로 낮과 밤을 구분한 24시간 링을 결합하는 전통적인 월드타임 구성을 따르면서도, 시와 분을 회전 디스크로 표시하는 방식을 더했다. 여기에 국제신호기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픽토그램을 배치해 기존 월드타이머와 다른 인상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월드타이머는 표시 정보가 많은 만큼 디테일을 절제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에스칼 월드타임은 오히려 복잡한 구성과 강한 색채를 전면에 내세웠다. 시·분
디스크는 다이얼 중앙의 삼각형 영역에서 뻗어나온 노란색 화살표를 기준으로 로컬 타임을 읽도록 설계됐고, 단숨에
에스칼 월드타임의 시그너처가 됐다. 다이얼의 픽토그램은 가상의 헤럴딕(heraldic)
스타일 깃발 패턴을 바탕으로 루이 비통 트렁크의 스트라이프 모티브, 다미에 체크, 모노그램 플라워, 각 도시를 상징하는 컬러를 결합했다. 이 장식은 프린트가 아니었다. 무려 약 50시간에 걸친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1 / 에스칼 월드타임의 칼리버 LFT VO12.01. 풀 로터 사양이다. 2 / 픽토그램은 각각의 컬러 레이어를 올리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1년 뒤 등장한 에스칼 타임 존은 에스칼 월드타임의 후속 모델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시침과 플로팅 분침을 사용해 전작보다 시간 읽기가 쉬워졌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에스칼 월드타임의 표시 방식을 보완한 셈이다. 미니어처 페인팅 공정은 생략했지만, 특유의 픽토그램과 컬러 구성은 유지했다. 이때부터 픽토그램은 에스칼
월드타임 계열을 구분하는 가장 강한 심벌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에스칼 월드타임은 전통적인 월드타임
구성을 따르면서도 표시 방식을 다시 정리했다. 중앙 다이얼 12시
방향에 고정한 삼각형 마커가 시침 역할을 하며, 싱글 핸드처럼 보이는 분침과 점핑 월드타임 구조가 결합된다. 덕분에 복잡한 기능을 품고도 다이얼 중앙에는 여백이 생겼다. 모노그램
캔버스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그레인 패턴은 이 여백에 깊이를 더한다.
픽토그램은 이번에도 에스칼 월드타임의 중심에 있다. 루이 비통의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인 라 파브리끄 데 자르(La
Fabrique des Arts)가 이 복잡한 다이얼을 완성한다. 총 35가지 컬러를 사용하는 픽토그램은 각각의 컬러 레이어를 올리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해 완성되며, 다이얼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약 일주일이 걸린다. 이 수작업 공정은
기능 표시를 넘어 에스칼 월드타임이 지닌 장식성과 공예적 가치를 뒷받침한다. 에스칼 월드타임에는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LFT VO12.01이 탑재된다. 설계와
제작은 라 파브리끄 뒤 떵 루이 비통이 맡았다. 드레스 워치 성향이 강한 마이크로 로터 구조의 칼리버 LFT023과 달리, LFT VO12.01은 풀 로터를 채택했다. 에스칼 월드타임의 활동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무브먼트의 구조와 피니싱에서도 드러난다. 섬세한 표면 마감, 휠과
피니언의 통일감 있는 컬러 처리, 정돈된 브리지 구성은 두 무브먼트가 공유하는 특징이다. 루이 비통 하이 워치메이킹의 심도를 재확인할 수 있다.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은 루이 비통 최초의 센트럴 투르비용이다. 일반적으로 다이얼 6시 방향에 자리하는 투르비용 케이지를 다이얼
정중앙으로 옮긴 구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독립 시계 제작자 할디만(Haldimann)의 H1 플라잉 센트럴 투르비용, 프랭크 뮬러의 그랜드 센트럴 투르비용, 로저드뷔의 오르비스 인 마키나
센트럴 모노투르비용으로 이어지는 센트럴 투르비용 계보에 놓을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센트럴 투르비용은 투르비용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다. 밸런스와 케이지가 다이얼 한가운데에서 회전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분침 배치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시각 표시 방식을 새로 설계하거나 우회해야 하고, 무브먼트 구성도 그에 맞춰 다시 짜야 한다. 지금도 센트럴 투르비용이 극히 드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은 이 까다로운 구조에 월드타임 기능까지 결합했다는 점에서 한층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월드타임과 센트럴 투르비용, 그리고 메티에 다르 페인팅을 통해 실용성과 아름다움, 하이 워치메이킹 기술력이 조화를 보여준 에스칼 월드타임 투르비용.
루이 비통은 월드타이머의 구조에서 해법을 찾았다. 월드타이머는 도시 디스크와 24시간 링이 다이얼 바깥쪽을 따라 움직이는
기능이다. 상대적으로 중앙 공간을 비워둘 수 있다.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은 이 특성을 활용해 투르비용 케이지를 정중앙에 배치했다. 기능의 배치와 시각적
효과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구성이다. 다이얼 중앙에서 회전하는 투르비용 케이지는 모노그램 플라워(Monogram Flower)를 모티브로 삼았다. 중앙 축을 기준으로
네 개의 둥근 꽃잎이 뻗어나가는 형태다. 투르비용이라는 전통적 컴플리케이션 안에 루이 비통의 상징을
직접 새긴 셈이다. 케이지 바깥쪽에는 월드타임 기능을 위한 24시간
링과 도시 디스크가 자리한다. 낮과 밤을 구분한 24시간
링, 24개 도시명이 들어간 디스크가 전 세계 시간을 읽는 기준을 만든다.
도시 디스크에는 에스칼 월드타임 계열을 상징하는 픽토그램이 다시 등장한다. 다만 표현 방식은 에스칼 월드타임과 다르다. 스트라이프 모티브, 다미에 체크, 모노그램 플라워 같은 패턴은 샹르베 에나멜 기법으로
완성했다. 금속 표면을 파내 홈을 만들고, 그 안에 에나멜을
채운 뒤 가마에서 굽는 방식이다. 에스칼 월드타임의 미니어처 페인팅이 선명한 색채와 그래픽적인 인상을
앞세웠다면, 샹르베 에나멜은 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표정을 만든다.
에스칼 월드타임 플라잉 투르비용에서 센트럴 투르비용과 월드타임은 별개의 기능이 아니다. 중앙의 투르비용, 바깥쪽의 24시간 링과 도시 디스크, 그리고 샹르베 에나멜 픽토그램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맞물린다.

땅부르 컨버젼스 기요셰.
땅부르 컨버전스 기요셰
1920~1930년대에 유행한 몽트르 아 기셰(Montre à Guichet)는
시간 표시를 위한 최소한의 창만 남기고 다이얼 대부분을 금속 플레이트로 덮은 시계다. 프랑스어로 ‘기셰’는
창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작은 창을 통해 시간을 읽는 구조다. 최근
여러 브랜드가 이 형식을 다시 꺼내 들고 있으며, 루이 비통은
2025년 땅부르 컨버전스를 통해 이 흐름에 합류했다. 땅부르 컨버전스 기요셰는 아치형
디스플레이 안에서 시와 분을 표시하며, 시와 분 디스크가 모두 천천히 회전하는 드래깅 아워 앤 미니트(dragging hour and minute) 방식을 사용한다.
몽트르 아 기셰가 등장한 배경에는 당시의 생활 환경이 있다. 20세기 초 손목시계에 쓰인 미네랄 글라스는 충격에 약했다. 자동차와
철도처럼 빠른 이동수단이 보급되면서 시간을 더 즉각적으로 읽으려는 요구도 커졌다. 유리 노출을 줄이고, 숫자로 시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형식은 이런 조건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시간 표시는 위아래로 나뉜 두 개의 창을 통해 이뤄진다. 시와 분을 담당하는 두 개의 디스크가 디스플레이 중앙의 마름모형 마커를 기준으로 움직이며 시간을 가리킨다. 아치형 디스플레이는 땅부르 컨버전스의 표정을 결정하는 요소다. 루이
비통은 이 곡선을 아니에르(Asnières)에 자리한 루이 비통 가문의 저택 건축 장식, 특히 아라베스크 문양에서 가져왔다. 별도의 장식을 많이 더하지 않아도, 창의 형태만으로 인상을 남긴다.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은 몽트르 아 기셰의 전통적인 구성에 따라 케이스와
같은 소재의 플레이트로 덮었다. 올해 선보인 땅부르 컨버전스 기요셰는 이 넓은 금속면을 비워두지 않았다. 고전적인 기요셰 기법으로 플레이트 전체를 채웠다.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물결 패턴과 시간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방사형 패턴은 구름 사이로 번지는 햇살을 형상화한 것이다.

땅부르 컨버전스 커버에 기요셰를 세공하는 모습. 평면에 새기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작업이다.
루이 비통은 이를 위해 1850년대
제작된 로즈 엔진을 1년여에 걸쳐 복원했다. 땅부르 컨버전스는
케이스 전면에 미묘한 돔형 곡률이 있기 때문에, 평면 다이얼에 기요셰를 새기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다. 실제 패턴 테스트에만 6개월이 걸렸다. 기요셰 장인은 로즈 엔진의 뷔랭(burin, 절삭날)이 일정한 간격과 깊이, 압력으로 금속 표면을 깎아내도록 계속 확인하고
조정해야 한다. 눈으로 선의 흐름을 살피는 동시에, 선반을
통해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까지 감지한다. 하나의 플레이트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6시간이다.
모델명에 쓰인 ‘컨버전스’는 수렴, 서로 다른 요소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이다. 루이 비통에 모인 제작 역량이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의미도 된다.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LFT MA01.01, 북을 닮은 땅부르 케이스, 라 파브리끄 데 자르의 기요셰 장식이 모두 이 시계 안에 들어 있다. 땅부르 컨버전스 기요셰는 작은 창으로 시간을 읽는 20세기 초의 형식을 루이 비통의 케이스 구조와 장식 공정으로 다시 빚어낸 시간 여행의 산물이다.
게재호
105호(07/08월호)
글
구교철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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