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9.10

    2025.09.10

오리스의 모든 것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한 시계 공장이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독립 브랜드가 되기까지. 오리스의 자세한 기록을 복기했다.

내용


스위스 홀스테인에 자리한 오리스 본사.


새로운 색, 피치 로즈 

피치 로즈(Peach Rose)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여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남성적인. 또 대담하면서도 활기차고 산뜻한 컬러다. 오리스가 새로운 로고 컬러로 낙점한 색이기도 하다. 오리스가 지난 1년간 심혈을 기울인 리브랜딩의 결과물이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과감한 트렌드의 선봉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이 컬러는 스위스 홀스테인(Hölstein)의 오리스 본사 건물 외벽 색에서 따왔다. 리브랜딩의 지향점을 시사한다. 오리스 공동 CEO 롤프 스튜더(Rolf Studer)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를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오리스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난세를 헤쳐나갈 요량이다. 우선 이전의 강한 슬로건이나 과도한 메시지는 과감하게 배제했다. 대신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진지한 자세로 워치메이킹에 임하면서도,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기계식 시계를 제작한다”는 비전을 앞세워 대중에게 한층 친근하게 다가가려 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 홀스테인에서 태어난 오리스 베어와 함께, 진정한 독립 브랜드의 가능성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홀스테인의 자긍심 

홀스테인은 정말로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2023년 기준 인구 2,600여 명의 작은 마을에서 오리스는 곧 홀스테인이나 다름없다. 1904년, 스위스 시계 생산의 중심지의 하나인 르로클에서 조르주 크리스티앙(Georges Christian)과 폴 카탱(Paul Cattin)이 독일어를 쓰는 홀스테인으로 이주했다. 둘은 문을 닫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로너&코(Lohner&Co)의 공장을 인수해 ‘홀스테인 크리스티앙&카탱 시계공장’이라는 사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마을 전체가 힘을 모았던 시계 산업이 창업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나, 두 이방인이 나타나 희망을 되살린 것이다. 초기에 여러 상표로 시계를 생산하던 회사는 곧 오리스라는 이름을 택한다. 이 이름은 회사 근처를 흐르는 오리스바흐(Orisbach) 강에서 따왔다. 국제적이지만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 대신 친숙하고 아름다운 음률, 발음의 용이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오리스 홀스테인 매뉴팩처를 둘러싼 발덴부르크 계곡의 풍경.

 

이 무렵 오리스의 무브먼트는 핀-팰릿 이스케이프먼트(Pin pallet escapement) 시스템이었다. 스위스 시계 제작자 L. 페론(L. Peron)이 발명한 핀-팰릿 이스케이프먼트는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와 유사해 보이지만, 팰릿 포크의 주얼 대신 이스케이프먼트와 동일한 금속 소재의 수직형 핀을 사용했다. 이런 방식은 생산 비용과 효율 면에서 유리했지만, 핀과 이스케이프 휠이 마찰을 일으켜 수명이 짧았다. 그럼에도 높은 생산성 덕분에 대량 생산이 가능했고, 훗날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로 판로를 넓힐 수 있었다. 오리스의 설립에서 성장까지의 과정은 언뜻 순조로워 보이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프랑스어권에서 이주한 크리스티앙과 카탱을 비롯해 다른 지역에서 영입한 워치메이커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홀스테인의 사람들은 독일어를 사용했다. 언어와 문화가 이질적인 두 집단은 시계 생산이라는 목표를 계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문화가 융합되며 홀스테인은 번성의 길로 들어섰다. 1900년대 초반 수십 명에 불과하던 홀스테인의 인구는 1910년대에 접어들면서 800명을 넘었다. 그중 300여 명이 오리스 직원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레 인프라가 생겨났고, 홀스테인은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오리스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8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연간 약 120만 개의 시계를 제작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조사 상위 10위 반열에 들었다. 오리스는 그야말로 홀스테인의 자긍심이나 다름없었다.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칼리버 403의 테라코타 다이얼.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1927년 공동 창업자의 한 명인 조르주 크리스티앙이 세상을 떠나고 1년 뒤인 1928년, 크리스티앙의 처남인 오스카 헤르조그(Oscar Herzog)가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1971년까지 무려 41년의 시간 동안 오리스를 발전시킨 전설적인 인물이다. 오리스 역사의 숱한 이정표가 그의 재임 시절 세워졌다. 첫 번째 이정표는 핀-팰릿 이스케이프먼트와 관련 있다. 1934년 스위스 연방 정부는 ‘Watch Statute’를 제정했다. 현 ‘스위스 메이드’의 전신격으로 스위스 시계를 규정하는 요소를 확립했으며, 넓은 의미에서 자국의 시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취한 모든 법적 조치를 말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그 규정이 제대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스위스 연방 정부가 ‘적합 기업’으로 판단한 곳에만 특정 면허를 발급하는 정책은 소규모 시계 브랜드에 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 무렵 3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합리적인 시계를 만들던 오리스는 면허 발급의 대상이 아니었다. 스위스 연방 정부는 시계 산업이 지나치게 확장되고, 자칫 시계의 가격 하락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을 두려워해 새로운 기술 사용에 대한 규제도 했다. 현재 이스케이프먼트의 표준이나 마찬가지인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가 대표적이다. 해당 방식이 손목시계에 적합하며 내구성이 빼어나다는 점은 명확했다. 오리스도 스위스 이스케이프먼트를 사용하길 원했지만 연방 정부의 규제가 걸렸다. 오리스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무려 핀-팰릿 이스케이프먼트 칼리버로 1968년 스위스 르로클의 ‘Bureaux Officiels de Contrôle de la Marche des Montres(현 C.O.S.C.의 전신)’에서 정확성 인증을 받았다. 이후로도 수차례 더 인증을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1938년 오리스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정표가 탄생한다. 오리스 최초의 파일럿 워치이자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빅크라운이다. 냉난방 장비가 없는 군용기의 파일럿이 두꺼운 장갑을 착용한 채로 크라운을 조작할 수 있도록, 케이스 지름 대비 커다란 크라운을 장착해 붙은 이름이다. 파일럿 워치 장르의 표준이 확립되기 전임에도 빅크라운에는 철저한 기능적 고찰이 담겼다. 포인터 데이트는 중앙의 포인터 바늘이 다이얼 가장자리의 날짜를 가리키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도 빅크라운의 개성을 대표한다. 이후 파일럿 워치는 신속한 가독성을 제공하기 위해 센터세컨드(중앙 초침)와 날짜창을 결합했다. 빅크라운은 이런 새로운 표준이 나오기 전의 보편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수출길이 막혔다. 오리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해법은 알람 탁상시계였다. 특히 8일 파워리저브를 갖춘 오리스의 고급 모델은 위기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는 탁상시계도 핸드와인딩이었기 때문에 태엽을 모두 감았을 때 일주일 이상 작동하는 8 데이즈 모델을 고급으로 쳤다.



현대 오리스 다이버 워치가 지향하는 분위기 속 다이버 데이트 모델.


모던 에라 

시계 역사에서 1950년~1970년대는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브랜드는 대부분 이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 오리스의 발전사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증거는 도처에 있다. 1949년엔 다이얼에 방수 기능을 뜻하는 ‘Waterproof’를 표시하기 시작했고, 1952년엔 양방향 와인딩 메커니즘과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지닌 혁신적인 칼리버 601을 발표했다.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는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셀프와인딩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남은 동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발상은 오리스가 시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1950년 초반은 방수 시계를 넘어 다이버 워치의 시대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셀프와인딩 워치가 본격적으로 데뷔한 때이기도 했다. 오리스는 시계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놓친 적이 없다. 오리스 다이버즈 컬렉션의 주요 구성원인 식스티파이브(Sixty-Five)는 오리스의 본격적인 다이버 워치다. 이름처럼 1965년에 탄생했다. 이 모델은 현재 식스티파이브의 직접적인 원형이다. 반시계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베젤의 또렷한 야광 도트, 로마자를 반전시킨 독특한 야광 인덱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기능적인 케이스, 마지막으로 빅크라운 못지않은 큰 크라운이 특징이다. 무브먼트는 기본적으로 핸드와인딩 방식이지만 셀프와인딩 칼리버를 탑재한 스타(Star)가 등장해 컬렉션을 확장했다. 이 모델은 현재 식스티파이브 데이트의 원조격으로, 전체적인 구성 요소는 물론 다이얼과 인덱스 형태 등 디테일까지 닮았다. 1970년에는 오리스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인 크로노리스(Chronoris)를 발표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당시의 컬러 코드를 따른 평범한 시계처럼 보이지만, 초침처럼 보이는 크로노그래프 핸드와 이너 베젤을 이용해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수행했다. 이처럼 극도로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메커니즘은 실용성을 중시한 오리스다운 접근법이었다.



프로파일럿 X 커밋 한정판.


이처럼 새로운 장르와 기능을 쉬지 않고 소개하던 때, 오리스는 마침내 핀-팰릿 이스케이프먼트 대신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를 채용하며 비약적인 도약을 맞이한다. 1966년 ‘Watch Statute’의 제약에서 풀려난 덕분이다.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를 채택한 새 칼리버는 여러 컬렉션에 투입됐고, 최고의 정확성을 상징하는 뇌샤텔 천문대에서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오리스 CEO 롤프 스튜더.


포트만과 헤르조그 

변호사 출신 롤프 포트만(Rolf Portmann)은 ‘Watch Statute’의 지나친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며, 오스카 헤르조그의 뒤를 이어 오리스의 수장이 됐다. 하지만 그의 헌신은 스위스 시계 산업 전체를 휩쓴 쿼츠 파동의 악재 앞에서 빛바랠 위기에 처했다. 포트만은 생존을 위해 억지로 쿼츠 시계를 생산하며 어둠의 터널을 간신히 벗어났다. 1982년엔 마침내 울리히 헤르조그(Ulrich W. Herzog)와 함께 오리스의 지분을 인수한다. 오리스를 독립 브랜드의 경로로 수정한 것이다. 그들은 기계식 시계 고유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하며 오리스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당시 관점에서는 쿼츠 시계라는 메가 트렌드의 역주행을 감행한 것이다.



오리스의 새로운 브랜드 컬러에 영감을 준 무드보드. 


그들은 오리스 대표 모델인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를 부활시키고, 개성적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모듈을 자체적으로 제작했다. 오리스도 1970년대를 거친 여느 스위스 브랜드처럼 무브먼트 설계도나 생산 시설을 상실한 상태였다. 인하우스 무브먼트 제작 능력도 잃었다. 대신 공급이 넘쳐났던 ETA의 범용 무브먼트를 베이스로 활용했다. 여기에 다양한 모듈을 더하자 오리스만의 독자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쿼츠 시대에서 희귀해진 기계식 알람 손목시계를 다시 소개했고 데이 데이트와 문페이즈, 그리고 세컨드 타임존의 조합인 일명 ‘스몰 컴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오리스의 스몰 컴플리케이션은 마치 퍼페추얼 캘린더 같은 매력적인 레이아웃이 특징이었다. 시, 분, 그리고 초침이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갖춘 레귤레이터, 24개 타임존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월드타이머 같은 개성적인 모델을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스타일로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월드타이머는 케이스 측면에 장착한 두 개의 푸시 버튼을 이용해 날짜를 변경하고, 세컨드 타임존을 한 시간 단위로 변경할 수 있었다. 시계 업계에서 최초로 도입된 방식이었고, 편리한 듀얼타임을 만들고자 하는 많은 브랜드에 영감을 줬다. 오리스는 이 방식에 특허를 취득했다. 오리스의 상징이 된 레드 로터(red rotor)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오리스의 모든 것, 즉 컬렉션, 기술력, 이미지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포트만과 헤르조그가 함께 개척한 여정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홀스테인의 오리스 매뉴팩처 한켠.


오리스 인하우스 칼리버 라인업

2004년 오리스는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모던 에라를 대표하는 기능인 월드타이머와 1940년대를 상징하는 8 데이즈 탁상시계를 세트로 구성한 센테니얼(Centennial)을 발표했다. 나름 의미가 깊은 에디션이지만 100년의 역사를 기념하기에는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었다. 오리스는 2014년 창립 110주년에 완전히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발표했다. 과거 270여 개가 넘는 칼리버를 자체 제작했던 오리스의 본질을 되찾는 신호탄이었다.


칼리버 111, 112, 113, 114, 115 

오리스 칼리버의 플래그십으로 칼리버 110이 등장한 이후, 기능을 추가한 칼리버가 하나씩 순서대로 나왔다. 칼리버 111, 112, 113, 114를 거쳐 현재 칼리버 115만 남아 있다. 칼리버 115는 칼리버 110을 현대적인 스켈레톤 칼리버로 변모시킨 버전이다.



오리스 인하우스 칼리버 400.


칼리버 400

센터 세컨드(중앙 초침)와 날짜 기능을 갖춘 셀프와인딩 칼리버. 2020년에 선보였으며, 칼리버 110 시리즈보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췄다. 5일(120시간)의 넉넉한 파워리저브에 이어, 10년의 오버홀 주기, 그리고 10년 보증을 실현했다. 시계 업계에서 10년 보증은 극히 드물다. 오리스의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오리스는 로터의 볼베어링 대신 슬라이드 베어링 방식을 택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이스케이프먼트에는 실리시움 같은 비금속 소재를 택해 높은 항자성과 하루 오차 10초 이내의 정확성도 동시에 달성했다. 항자성의 경우 안티마그네틱 워치 규정인 ISO764를 상회한다. 칼리버 400 또한 여러 갈래로 파생을 거쳤다. 칼리버 401은 칼리버 400의 스몰 세컨드 버전이다. 칼리버 403은 빅크라운의 포인터 데이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구성을 자랑한다. 칼리버 473은 칼리버 403을 핸드와인딩 방식으로 수정하고 뒷면(글라스백)에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탑재했다.


칼리버 733-1

칼리버 733 시리즈는 ETA의 범용 무브먼트와 함께 오리스를 지탱해온 셀리타의 셀프와인딩 칼리버를 베이스로 한다. 오리스는 다른 시계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바로 투트랙(two track) 방식이다. 동일 모델 안에서 인하우스 칼리버와 합리적인 칼리버 733 시리즈 중 고를 수 있다. 소비의 가치관까지 존중하겠다는 의미다.


[ORIS LINE UP]

현재 오리스 라인업은 다이버 워치와 파일럿 워치를 중심으로 전개 중이다. 모터스포츠 컬렉션이나 드레스 워치 아틀리에 컬렉션까지 아우르던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확실한 정체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주요 모델에서 인하우스 칼리버 400과 범용 칼리버를 모두 선택할 수 있도록 도모했다.


DIVER WATCH

1965년에 본격적인 다이버 워치의 세계에 뛰어든 오리스. 그간 축적한 노하우와 아카이브를 발판 삼아 클래식과 모던을 넘나들며, 모델마다 독특한 개성과 헤리티지를 담아내고 있다.


아퀴스 데이트

오리스를 대표하는 다이버 워치. 2024년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진행됐지만, 신형과 구형을 나란히 두고 비교하지 않는다면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쉽게 알 수 없다. 아퀴스 데이트가 이미 완성형이라, 쉽게 눈에 띌 정도의 업데이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첫인상과 착용감은 확연히 다르다. 전체적으로 더 세련돼졌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좀 더 슬림하고 날렵해졌고, 날짜창의 컬러가 다이얼과 통일됐으며, 인덱스와 폰트가 변경됐다. 다양한 사이즈와 범용 무브먼트를 결합해 폭넓은 수요를 충족한다.



아퀴스 데이트 칼리버 400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탑재한 플래그십. 외모는 아퀴스 데이트와 뚜렷한 차이를 찾기 어렵지만 케이스 사이즈를 보면 남성을 타깃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가격 차이만큼 편의성도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아퀴스 데이트 칼리버 400은 일 오차가 -3초에서 +5초 사이이며, 파워리저브는 120시간에 달한다. 여기에 높은 항자 성능을 결합해 일상생활에서 더욱 자유로워졌다. 별도의 도구 없이 쉽게 탈착할 수 있는 브레이슬릿 시스템도 장점을 더한다.



아퀴스 데이트 릴리프

아퀴스 데이트 릴리프는 다이버 워치를 매개로 독특한 미감을 전달한다. 그 중심에 미니트 인덱스가 튀어나오게 릴리프 가공한 베젤 인서트가 있다. 미니트 인덱스는 매트한 금속 질감을 배경으로 광택을 발한다. 최근 리뉴얼을 통해 릴리프 가공은 입체감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났다. 레드 컬러의 롤리팝 초침은 모노톤 워치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요소다.



PILOT WATCH 

파일럿 워치 장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공기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지면서 점차 구체적인 기준이 확립됐다. 오리스는 일찍이 1938년에 빅크라운으로 파일럿 워치의 기능과 구성 요소를 제시했고, 현 파일럿 컬렉션의 기반을 제공했다.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빅크라운은 1938년 등장 이후, 오리스를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 파일럿이 장갑을 착용한 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크고 두껍게 만든 크라운, 포인터로 알려주는 날짜 기능의 실용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플랫 베젤과 볼드한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를 결합한 스타일은 2021년 홀스테인 에디션으로 첫선을 보였고, 올해 이를 베이스로 옐로, 블루, 라일락 컬러 다이얼 버전이 등장했다. 투트랙 전략이 충실하게 반영된 모델이긴 하지만, 현재까지는 인하우스 칼리버를 탑재한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403과 다이얼 컬러를 공유하지 않아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칼리버 403

셀프와인딩 칼리버 400의 파생형인 칼리버 403을 탑재한 모델. 하나의 모델을 위해 파생 무브먼트를 만들 정도로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가 가지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라인은 오리스의 새로운 로고 컬러와 유사한 테라코타와 그린의 두 가지로 선보였다. 이런 상반된 매력이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403이 지닌 특징의 하나다.



프로파일럿 X
 

빅크라운이 올드 윙이라면 프로파일럿 X는 현대의 최신 기체다. 슬릭한 케이스 디자인과 사선으로 홈을 낸 베젤 디테일은 마치 제트 엔진의 팬이 회전하는 듯한 역동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디즈니 〈머펫쇼(The Muppet Show)〉의 유쾌한 사회자 ‘커밋(Kermit the Frog)’과 손을 잡은 프로파일럿 X는 청개구리 커밋의 생동감 넘치는 그린을 다이얼에 입히고, 커밋 데이(Kermit Day)로 지정한 매월 첫날에 커밋의 위트와 쾌활함을 전한다. 신작 프로파일럿 X 미스 피기 에디션은 〈머펫쇼〉의 ‘미스 피기(Miss Piggy)’를 출연시켰다. 커밋과 대비를 이루는 핫핑크 다이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케이스백의 스파이홀(spyhole)에는 로터의 회전에 따라 미스 피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쾌한 기믹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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