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얼리 워치의 부상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시계가 다시 한번 변화한 삶의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팬데믹 이후 우리의 일상은 급격히 압축됐고, 그 여파는 소비의 방향까지 바꿨다. 출근과 퇴근,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가 흐려진 환경에서 시계는 더 이상 기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제 손목 위의 시계는 한층 더 '보여지는 물건'이 됐다. 그 변화의 중심에 주얼리 워치가 있다.
화상 회의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화면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민감해졌다. 상반신 위주의 프레이밍 속에서 옷차림은 단순해졌지만, 손목과 손끝처럼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디테일은 오히려 강조됐다. 이 지점에서 주얼리는 가장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자기표현의 도구로 기능한다. 시계 역시 그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주얼리 워치는 시간을 읽는 도구이자, 이미지와 태도를 드러내는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계는 언제나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반응하며 형태와 성격을 바꿔온 물건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파워 리저브가 좋은 예다. 파워 리저브는 시계의 구동 시간과 직결되는 핵심 성능이지만, 단순히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메인스프링의 토크 관리, 정확도 유지, 부품 마모와 수명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리기 때문이다.
스위스 무브먼트 전문 제조사의 ETA의 대표적인 셀프와인딩 칼리버인 2824와 2892의 파워 리저브가 약 38시간 내외로 설계된 이유 역시 당시의 생활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 무브먼트들이 개발된 1970년대 초·중반에는 주 5.5일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38시간 정도의 파워 리저브로도 일상 사용에 충분했다.
2000년 이후 설계된 셀프와인딩 칼리버들은 60시간 이상의 파워 리저브를 기본으로 삼기 시작했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금요일 퇴근 후 벗어둔 시계가 월요일 아침까지 멈추지 않고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워 리저브의 증가는 기술 발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리 삶의 리듬이 먼저 변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시계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반응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얼리 워치의 부상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힌다. 팬데믹은 근무 환경을 급격히 바꾸었고, 주얼리 시장의 지형도 자체를 재편했다. 위기 상황에서도 인간의 과시 욕구와 자기 위안의 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사회 전반을 지배할수록 '반짝이는 물건'에 대한 욕망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팬데믹 이후 유동성 장세가 마무리되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자, 고가 시계 시장은 중국 경제 둔화와 맞물려 위축됐다. 반면 주얼리 시장은 상대적으로 견고한 흐름을 이어갔다. 고가 시계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 '스몰 주얼리'는 불황기에 특히 강력한 카테고리로 작용한다. '셀프 선물'이나 '기념일 선물'처럼 감정에 기반한 소비 패턴 역시 주얼리 시장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주얼러이자 시계 제조사라는 이중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들의 강점이 두드러졌다. 반지나 목걸이를 보러 온 고객이 자연스럽게 주얼리 워치로 관심을 확장하는 '크로스오버' 소비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금반지를 사러 왔다가 보석이 가득한 금 시계를 즉흥적으로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도 주얼리 워치 특유의 화려함을 유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절묘한 균형점을 가장 먼저 제시한 사례가 바로 쇼파드의 해피 다이아몬드다. 경쾌한 스틸 케이스와 다이얼 위를 유영하는 다이아몬드라는 독창적인 발상은 주얼리 워치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화려함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은 '데일리 주얼리 워치'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팬데믹 이후 주얼리 워치의 인기는 초고소득층을 위한 하이 주얼리 워치를 정점으로, 보다 실용적인 데일리 워치로 확산됐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스틸 주얼리 워치와 일상 착용성이 뛰어난 아이코닉 모델들이 그 흐름을 뒷받침한다. 이제는 전문 주얼러와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정통 시계 제조사들까지 가세해 스틸 케이스의 인덱스와 베젤에 프티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시계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손목 위의 작은 보석들은 화상 회의 플랫폼의 제한된 해상도 속에서도 또렷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주얼리 워치의 부상은 단지 '화려함의 귀환'이 아니다. 시계가 다시 한번, 변화한 삶의 방식에 맞춰 스스로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
게재호
102호(1/2월호)
Editor
구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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