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텍 필립 레어 핸드크래프트 2026

수공예 시계 전시가 전하는 메시지
  • 2026.09.23

    2026.09.23

  • By 이재근

파텍 필립은 매년 레어 핸드크래프트 전시로 대량의 수공예 시계를 선보인다. 현장에서 느낀 파텍 필립의 예술 세계를 전한다.


파텍 필립 살롱 제네바. 
 

레어 핸드크래프트는 파텍 필립이 매년 봄 스위스 제네바 뤼 뒤 론(Rue du Rhône) 거리에 위치한 파텍 필립 살롱 제네바에서 개최하는 수공예 시계 전시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워치스 앤 원더스 제네바가 워치메이커로서의 전통과 혁신을 보여주는 무대라면, 레어 핸드크래프트는 장인들의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예술적 수공예) 역량을 대중에게 헌정하는 자리다.

올해는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9일까지 총 65점(돔형 테이블 클락 23점, 회중시계 10점, 손목시계 32점)의 시계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에나멜링, 인그레이빙, 기요셰, 마케트리, 젬 세팅 등 파텍 필립의 섬세한 수공예 기술이 집약된 작품들이다. 전시된 시계 대부분은 이미 판매가 완료된 세계 하나뿐인 유니크 피스 혹은 극소량 한정판이므로, 전시가 끝나는 즉시 전 세계 VIP 곁으로 인도된다. 사실상 각각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이번에는 프리뷰 세션에 초대받아 파텍 필립의 마스터피스를 직접 경험했다.



레어 핸드크래프트 전시장 내부. 쇼케이스 주변 벽면은 각 작품의 테마와 어우러지는 분위기로 연출했다. 


세상을 담다

파텍 필립 레어 핸드크래프트 전시작에는 한 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세계의 아름다운 한 장면을 담아냈다는 것. 여기에는 대자연의 동식물과 풍경부터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예술 작품, 심지어 지역 축제나 문화처럼 무형의 유산도 포함된다. 올해는 세계 각지의 화산과 극지방의 정경, 스페인이 떠오르는 플라멩코 무용수와 투우사, 그리고 멕시코의 망자의 날(Dia de Muertos) 축제 등 다양한 모티브를 시계에 새겼다.



우드 마케트리 기법으로 제작한 칼라트라바 미니트 리피터 일렉트릭 기타 Ref. 5237/50R-011.
 

각 피사체를 묘사하기에 최적화된 기법을 찾아냈다는 점 역시 놀랍다. 돔형 테이블 클락 마그마(Ref. 20202N-001)에서는 납작하게 누른 금을 세워 구역을 나눈 뒤 에나멜을 채우는 클루아조네 에나멜(cloisonné enamel) 기법을 활용해 갈라진 대지와 용암을 구현하는가 하면, 칼라트라바 미니트 리피터 일렉트릭 기타(Ref. 5278/50R-011)는 얇은 나뭇조각과 미세한 인레이를 촘촘히 끼워넣는 우드 마케트리 기법으로 일렉트릭 기타의 미세한 질감까지 표현했다. 요소요소에 적용된 수공예 기법 덕분에 작품이 보다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기계식 시계의 공학적인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깊은 전율을 선사한다.


오트 오를로주리 데모크라시

스위스 하이엔드 워치메이커를 대표하는 파텍 필립은 기계식 시계의 독보적 강자이자 워치메이킹의 미래를 제시해온 선구자다. 1970년대 쿼츠 파동과 세계 경제 위기로 기계식 시계의 존속이 위협받을 때는 컴플리케이션 미학을 내세우며 가치를 증명했고, 창립 이래 제작한 모든 시계에 영구적인 복원 서비스를 보장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시계가 가진 영속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오늘날 파텍 필립이 메티에 다르 전시를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전시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파텍 필립은 이미 2012년부터 워치 아트 그랜드(Watch Art Grand) 전시회를 통해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를 대중과 공유해왔다. 반면, 2018년 처음 시작된 레어 핸드크래프트 전시는 오직 수공예의 예술적인 기교와 실력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한다. 이는 기계식 시계가 지닌 미학적 가치를 다시금 정의하고, 점차 사라져가는 수공 예술의 명맥을 보존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강력한 의지다. 



사전 예약만 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퍼블릭 전시 형태를 택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과거 바젤월드(Baselworld)나 SIHH(스위스 고급 시계 박람회) 등은 소수의 VIP와 업계 관계자들에게만 허락된 폐쇄적인 무대였으나, 2017년을 기점으로 점차 대중에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파텍 필립의 레어 핸드크래프트 전시 역시 이러한 시계 박람회의 대중화 트렌드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전 세계 시계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워치스 앤 원더스 기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대중과의 접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클루아조네 에나멜 기법으로 제작한 돔
형 테이블 클락 마그마 Ref. 20202N-001.


초연결 사회에 접어들며 하이엔드 고객층 역시 소셜 미디어와 대중적인 이슈에 깊은 영향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4차 산업혁명과 AI 혁신 등으로 자산의 변동성과 정보의 확산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현시점에서, 브랜드의 모든 정보와 고객층을 과거처럼 폐쇄적으로만 관리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대중은 당장 시계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브랜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하이엔드 워치에 대한 열망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확성기이자, 잠재적 고객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메티에 다르의 예술성과 퍼블릭 전시라는 개방성의 결합은, 기계식 시계의 미래를 제시해온 파텍 필립이 띄운 우아한 승부수로 해석된다. 기계식 시계 기술과 예술적 극치가 어우러진 오트 오를로주리(Haute Horlogerie)의 미학적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파텍 필립은 다시 한번 시계 산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시대의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플라멩코 포켓워치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꼽는다면 단연 이 작품이다. 주제는 스페인 전통 무용 플라멩코(flamenco). 조명 아래 춤추는 플라멩코 무용수, 바일라오라(bailaora)를 그대로 새긴 케이스백이 압권이다. 무용수와 관객은 클루아조네 에나멜 기법으로, 무용수가 들고 있는 부채는 에나멜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마감했다. 실제보다 길게 표현한 붉은색 무용 드레스는 불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플라멩코는 다이얼로 이어진다. 강렬한 물결 무늬 기요셰 패턴과 레드 컬러 에나멜을 조합해 마치 위에서 내려다본 무용수 같다. 케이스에는 꽃무늬 띠를 핸드 인그레이빙했고 크라운엔 레드 스피넬 카보숑을 올렸다. 전용 옐로 골드 스탠드와 체인이 함께 제공돼 용도에 따라 탁상용 오브제로 감상하거나 회중시계 본연의 모습으로 휴대할 수 있다. 스탠드는 블랙 옵시디언을 베이스로 옐로 골드 구조물이 가지처럼 뻗은 형상이다. 꼭대기에 올린 부채 장식은 금속 프레임에 반투명 에나멜을 채우는 플리크아주르(Plique-à-jour) 기법으로 제작했다. 


Ref. 992/198J-001 기능 시·분, 스몰 세컨드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칼리버 17’’’ LEP PS, 18,000vph, 약 50시간 파워 리저브 케이스 지름 44.1mm, 두께 8.93mm, 옐로 골드, 솔리드백


젬 세팅 작업이 진행 중인 마코 돔형 테이블 클락의 케이스 프레임. 엄선된 젬스톤으로 조화로운 무지갯빛을 연출한다.


마코 돔형 테이블 클락

파텍 필립 최초의 젬 세팅 돔형 테이블 클락. 사실 파텍 필립은 과거 고위층 인사들을 위해 진귀한 젬스톤을 세팅한 탁상시계를 제작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돔형의 젬 세팅 테이블 클락은 전무했다. 1950년대 탄생 이후 돔형 테이블 클락이 전통 예술 기법, 그중에서도 에나멜링을 중점적으로 드러내는 무대로서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정적인 에나멜과 반짝이는 보석의 조화로 한층 입체적인 매력을 뽐낸다. 같은 의미에서 다채로운 컬러의 마코 앵무새(macaws)는 에나멜과 젬 세팅의 시너지를 표현할 최고의 피사체다. 48가지 에나멜 컬러 팔레트와 4가지 색상의 에나멜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마코 앵무새와 아마존 밀림을 표현했다. 형형색색의 에나멜은 무지갯빛 보석을 개연성 있게 뒷받침한다. 인덱스는 블랙 스피넬과 다양한 컬러 젬스톤을 매치해 레인보우 컬러웨이를 완성했다. 멀티컬러 사파이어가 블루 톤, 차보라이트가 그린 톤, 토파즈가 레드와 옐로 톤을 담당한다. 클락 케이스에도 젬스톤을 무지개 스펙트럼처럼 줄지어 세팅했다.


Ref. 22000M-001 기능 시·분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칼리버17’’’PEND DOME, 18,000vph 케이스 너비 128mm, 높이 213.5mm




댓글0

댓글작성

관련 기사

배너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