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옥션 아시아 시계 부문 책임자 겸 부회장 토마스 페라치가 서울을 방문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콩쿠르 델레강스 올로제르를 맞아 출품작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크로노스 코리아〉는 그를 만나 한국 컬렉터 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Thomas Perazzi
토마스 페라치 | 필립스 옥션 아시아 시계 부문 책임자 겸 부회장
크리스티, 소더비, 앤티쿼럼 등 주요 글로벌 경매 하우스를 거친 시계 경매 전문가로, 2017년 필립스 합류 이후 아시아 시계 경매 시장에서 다수의 기록적인 성과를 이끌었다.
주요 경매 하우스를 모두 경험했다. 지난 20년 동안 시계 경매 시장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 20년 동안 경매 시장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기술 발전이다. 내가 경매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서면 입찰(absentee bid)을 팩스로 받았다. 점점 온라인 입찰이 일반화되면서 지금은 컬렉터들과
훨씬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기술 발전은 거래 방식 자체도 크게 바꿔놓았다. 두 번째는 시장의 확장, 특히 아시아 시장의 성장이다. 20년 전만 해도 아시아 컬렉터들의 참여도는 지금보다 낮았다. 현재는 아시아가 시계뿐 아니라 다른 모든 카테고리의 경매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약 11년 전 오픈한 필립스 아시아
오피스 역시 글로벌 경매 시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빈티지 시계가 경매 시장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현대 하이엔드 시계나 독립 워치메이커 작품들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많은 브랜드는 2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리차드 밀, F.P.주른(François-Paul Journe), 드 베튠(De Bethune), 우르베르크(Urwerk) 같은 브랜드들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컬렉터들은 고품질, 복잡성,
그리고 소량 생산이라는 기준을 현대 시계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자연히 현대 시계 중에서도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매우 증가했고, 경매 가격 역시 상승했다. 예를 들어 2023년 뉴욕 경매에서 F.P.주른의 FFC 블루가 약 1100만 달러(약 144억원)에 낙찰됐다. F.P.주른 시계는 물론, 독립 시계 제작자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가 기록이었다. 경매 시장에서 현대 독립 시계 제작자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사례다.
그렇다면 경매 결과가 브랜드의 위상을 재정의한다고 보는가.
경매 결과는 컬렉터들이 어떤 브랜드와 시계에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브랜드에게도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경매는 일부 컬렉터만 접근 가능했던 시계나 특정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시계를 국제적인 무대에서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며, 경매 하우스의 역할 중 하나는 특정 시계가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나 시계의 중요성이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다. 현행 브랜드나 모델 중에서도 앞으로 경매에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보이는 브랜드가 있는가. 최근 경매에서 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브랜드들이 있다. 렉셉 렉셰피(Rexhep Rexhepi)는 소량 생산과 높은 완성도로 이미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고, 페테르만 베다(Petermann Bédat) 역시 젊고 재능 있는 워치메이커 듀오로서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 또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오실론(Oscillion)이라는 아주 작은 브랜드 하나를 5월 필립스 홍콩 경매에서 처음 선보이는데, 매우 흥미로운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콘 드 바슈 1955를 착용한 토마스 페라치. 오른손목 두 개의 밴드는 각각 일본 시계 컬렉팅 문화에만 집중한 '토키(TOKI)'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소장품 파텍 필립 Ref. 96이 등장한 2023년 필립스 홍콩 옥션의 입장권이다. 두 경매를 기념하기 위해 간직한다고.
경매에서 낙찰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컬렉팅의 기본 원칙은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품질, 희소성, 그리고 소장 이력이다. 빈티지 시계의 경우에는 얼마나 잘 보존됐는지가 중요하다. 복원 여부, 다이얼의 원형 상태, 무브먼트 부품 교체 여부 등을 살펴야 한다. 현대 시계의 경우에는 무브먼트의 복잡성, 마감 수준, 수작업 여부 같은 제작 품질이 주요 기준이 된다. 희소성 역시 중요하다. 빈티지 시계에서는 생산 수량이나 현재 시장에 남아 있는 개체 수가 유의미하며, 현대 시계에서는 한정판 여부나 브랜드 전체 생산량 등이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소장 이력은 더욱 의미가 있다. 유명 인물이 소장했던 시계, 저명한 컬렉터의 컬렉션에 포함됐던 시계, 또는 경매 기록을 통해 이력이 추적 가능한 시계는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특히 최초
소유자나 원 소유 가문에서 나온 시계라면 더욱 의미가 크다.
소장 이력이 있는 시계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시계 컬렉팅의 매력은 기술적 요소뿐 아니라 이야기에 있기 때문이다. 시계는 손목 위에서 삶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존재다. 그래서 소장 이력은 시계에 서사를 부여한다. 폴 뉴먼, 스티브 맥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인물과 연결된 시계가 특별한 울림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요소는 분명 시계의 가치와 중요성을 더욱 높여준다.

필립스 옥션 시계 부서가 자랑하는 도록.
아시아 최초로 ‘화이트 글러브 세일(출품작 전량 낙찰)’을 이끈 것은 인상적이었다. 100% 낙찰을 이끌어낸 특별한 전략이 있었나.
전혀.(웃음) 우리는 스스로가 시계 컬렉터이자 애호가다. 늘 컬렉터와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시장의 흐름을 읽으려 한다. 경매에는 시장에서 가장 좋은 상태, 가장 희소한 사례들만 선별해 출품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필립스 시계 부서가
도록 제작에 기울이는 노력도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경쟁사 관계자나 컬렉터, 딜러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완성도 높은 도록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매하우스마다 도록의 사진 콘셉트나 구성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 변화로 더 이상 인쇄 도록을 제작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럼에도 필립스가 시계 도록 제작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이유는 도록을 아카이브이자 기록물로 보기 때문이다. 도록은 고객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요한 자료이며, 시계를 선별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컬렉터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시계를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제시해왔다. 화이트 글러브 세일은 그런 축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시계 컬렉터 시장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아시아 시장은 분명히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컬렉터들의 지식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고, 〈크로노스〉 같은 매체들이 각국의 언어로 시계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시장 성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주요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젊고 열정적인 컬렉터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지식에 늘 놀라곤 한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워치메이킹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 시장은 10년, 2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단계에 와 있다고 본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필립스 한국 오피스는 약 8년 전에 문을 열었다. 그때 서울에 처음 방문했다. 당시 만났던 컬렉터들과 지금 만나는 컬렉터들을 비교해보면 지식 수준이 확실히 달라졌다. 컬렉터들의 관심이 주요 브랜드에서 독립 브랜드나 니치 브랜드로 확대된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은 비교적 젊은 시장이지만, 컬렉터들의 교육 수준과 이해도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반가운 시장이다. 한국 컬렉터들과 다양한 시계나 수집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즐겁다.

필립스 옥션 한국 팀과 함께.
한국 시장의 변화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한국 컬렉터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결혼 예물이나 생일 선물로 추천하는 시계였다. 지금은 그런 질문을 거의 받지 않는다. 시계가 중요한 날을 위한 선물을 넘어, 하나의 진지한 수집 대상이자 예술품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9년 동안 한국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국 컬렉터들에게 다른 지역의 컬렉터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면.
현재는 아시아 전반에서 취향이 상당히 비슷해졌다고 생각한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졌고, 기술 발전과 SNS를 통해 전 세계 컬렉터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시장은 더욱 세계화됐다. 물론 국가마다 특정 브랜드나 모델, 소재에 대한 선호가 다르긴 하다. 각 시장은 나름의 정체성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10~20년 전과 비교하면 국가별
취향 차이는 훨씬 옅어졌다.
한국 컬렉터들은 필립스에서 어떤 경험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현장 경매가 열리지 않더라도 홍콩, 제네바, 뉴욕에서 열리는 경매 프리뷰와 경매 행사에 참여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경매 출품작을 직접 보고 만지며 다양한 시계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수준의 시계를 실물로 접할 수 있고, 희귀한 빈티지 시계에 대해 배우는 기회도 된다. 다른 지역의 컬렉터들과 만나 서로의 경험과 열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한국에서 홍콩은 접근성이 높은 편이지 않나. 필립스 행사와 경매를 경험해보기에 매우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시장은 분명히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컬렉터들의 지식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계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소장했던 파텍 필립 Ref. 96을 판매했던 일이다. 경매인으로서도, 컬렉터로서도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시계 자체도 극히 희귀하다. 플래티넘 케이스로 제작된 모델이 단 5점뿐인데, 여기에 마지막 황제의 소장 이력까지 더해졌다. 이 시계가 실제로 푸이의 소장품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약 3년에 걸쳐 조사하고 연구했다. 내가 경험한 경매 프로젝트 중에서도 가장 길고 치열한 과정이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으로 중요한 시계’란.
경매는 시계의 가치를 시험하는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계가 반드시 가장 비싼 시계는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시계는 컬렉터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시계다. 우리는 반드시 세계 기록을 세우지는
않았더라도, 컬렉터들이 강하게 원했던 시계를 많이 다뤄왔다. 시계는 열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1만 달러(약 1000만원) 정도의 시계라도 어떤 컬렉터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동시에 경매 가격은 지난 10년, 20년
동안 전반적으로 상승해왔다. 시계 컬렉팅에 대한 열정이 줄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필립스가 거래하는 국가 역시 지난 10년 사이 약 30개국에서 70개국 이상으로 늘어났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이의 소장품이었던 파텍 필립 Ref. 96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 2023년 필립스 홍콩 경매에서 4885만 홍콩달러(약 83억원)에 낙찰됐다.
Editor
유현선
사진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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