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6대손 기욤 드 센은 현재 시계를 포함한 에르메스 그룹의 제조 부문 및 지분 투자를 이끌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워치메이커의 조건은 라 몽트르 에르메스(La Montre Hermès, 에르메스 시계)의 철학과 일치했다.

Guillaume de
Seynes
기욤 드 센|에르메스 제조 부문 및
지분 투자 총괄
에르메스 창업가 가문 6세대. 현 에르메스 그룹 CEO 악셀 뒤마의 사촌으로, 라 몽트르 에르메스와 에르메스 그룹의 제조 부문 및 지분 투자를 이끌어왔다.
에르메스가 진정한 워치메이커로 자리 잡았다고 느낀 전환점은 언제였나.
업계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아쏘 르 땅 서스팡뒤를 선보였을 때다. 아이디어 자체는 명료했지만, 그전까지 누구도 시간을 그렇게 다루지 않았다. 시계가 멈춘 듯 보이지만
실제 시간은 무브먼트 안에서 계속 흐른다. 에르메스다운 독창성이 분명하게 드러난 컴플리케이션이었다. 론칭 이후 언론, 경쟁사, 컬렉터의
반응이 달라졌다. 에르메스 부티크에서 시계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던 남성 고객들이 이 컴플리케이션을 사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컸다. 에르메스가 시계
업계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2011년 처음 선보인 에르메스 아쏘 르 땅 서스팡뒤. 케이스 9시 방향 푸셔를 누르면 시·분침이 12시 방향 중립 구간으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레트로그레이드 데이트 핸드 역시 다이얼 레이어 아래로 숨어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현재의 제작 역량을 갖추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투자나 결정은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중요한 결정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6년 보셰 매뉴팩처에 투자한 일이다. 에르메스의
기계식 무브먼트는 그곳에서 제작된다. 이 투자를 통해 에르메스는 높은 수준의 무브먼트 제작 역량에 접근했고, 독자적인 워치메이킹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다이얼과 케이스 분야의 통합이다. 에르메스는 다이얼 제조사 나테베르(Natéber SA)와 케이스
제조사 조세프 에라르(Joseph Erard SA)를 인수했다. 이
결정은 오늘날 에르메스의 생산 역량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브먼트, 다이얼, 케이스는 시계의 품질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다. 워치메이커라면 이 영역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
그 외에 에르메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워치메이커의 조건은 무엇인가.
스위스 워치메이킹이다. 에르메스는
스위스 워치메이커다. 시계 부문에서 거의 모든 부품을 스위스에서 생산한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기준이다. 반대로 가죽은 프랑스에서 만든다. 에르메스가 프랑스 밖에서 가죽을 만드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시계는
스위스, 가죽은 프랑스다. 각 분야의 정체성과 노하우가 있는
곳에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영역을 내부화하고, 어떤 영역을 파트너십으로 유지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기준은 명확하다. 핵심 노하우는
반드시 스스로 장악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부에서 만들 수는 없다. 시곗바늘이 좋은 예다. 전문 제조사가 사업을 유지하려면 수십만 개
단위로 생산해야 한다. 에르메스가 바늘을 자체 제작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
다이얼과 케이스는 다르다. 다이얼은
전량 자체 제작하고, 케이스도 대부분 내부에서 만든다. 이
두 영역은 시계의 완성도와 디자인, 생산 유연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
우리가 이 분야를 직접 통제해야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처럼,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시기가 오면 필요한 투자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외부 업체에 크게 의존했다면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내부 역량은 생산을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브랜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주는 자유다.
에르메스 그룹 안에서 시계 부문이 갖는 전략적 의미는.
에르메스 워치메이킹의 목표는 뛰어난 스위스 워치메이킹 노하우와 에르메스의
창조성을 결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품질과 복잡성 면에서 최고의 워치메이킹 브랜드들과 같은 수준의 노하우를
갖추고자 한다. 동시에 에르메스 그룹 전체를 관통하는 자유로운 창조성과 대담함을 시계에 담고자 한다. 가죽, 실크, 주얼리
등 에르메스가 여러 부문에서 쌓아온 기준과 태도가 시계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뛰어난 노하우, 강한 창조성, 독창적인 형태, 대담한
접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에르메스 워치메이킹의 포부다.
시계 부문은 그룹 안에서 또 다른 역할도 한다. 에르메스는 복잡한 컴플리케이션과 강한 스타일을 지닌 시계를 만들지만, 아름다운
쿼츠 워치도 계속 만든다. 쿼츠 워치는 가격 면에서 더 접근성이 높다.
어떤 모델은 에르메스 가방보다 가격대가 낮다. 그래서 시계는 에르메스의 세계로 들어오는
하나의 입구가 된다. 한국 시장이 좋은 예다. 한국에서 에르메스의
입지는 매우 강하다. 가방을 구입하기에는 부담이 있는 고객도 커스텀 주얼리나 시계를 통해 에르메스를
경험한다. 시계는 에르메스의 세계를 넓히는 중요한 접점이다.

아쏘 사마르칸드. 다이얼 우측 면의 말 머리 형상을 통해 미니트 리피터의 차이밍 메커니즘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시계 사업의 성장은 생산량 확대와 제품 가치 상승이라는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에르메스는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나.
지난 3~4년 동안 에르메스는
제품 가치 상승을 통한 성장을 추구해왔다. 평균 판매 가격을 높이는 방향이다. 에르메스 H08 같은 새로운 모델,
컴플리케이션, 기계식 무브먼트, 메티에 다르가
그 흐름을 만들었다. 실제로 에르메스 시계의 평균 가격은 상승했다. 물론
쿼츠 워치는 계속 생산된다. 쿼츠 워치 역시 에르메스 워치메이킹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우선순위는 더 복잡하고, 더 높은 수준의 기계식 시계를 통해
제품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있다. 수량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다. 시계
하나가 지닌 내용과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에르메스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시계를 만들면서도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에르메스는
기술적 성취를 과하게 앞세우는 브랜드가 아니다. 우리가 더 드러내고 싶은 것은 컴플리케이션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이다. 시간을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시계다. 매우 얇은 투르비용을 만든다고 해보자. 물론
그렇게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다. 하지만 에르메스에게 울트라 씬은 기록을 위한 목표가
아니다. 전체적인 미학적 균형 아래 얇은 투르비용이 아름다워 보인다면 얇게 만든다. 기술은 미학과 감성을 위해 쓰인다.
에르메스가 기술만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에르메스는 자신을 요란하게 드러내는 브랜드가 아니다. 둘째, 150년, 200년 동안 시계만 만들어온 워치메이커들에 대한 겸손함이 있다. 에르메스가 시계 업계에 비교적 늦게 진입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에르메스에 노하우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뛰어난 워치메이킹 역량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독창적인 접근과 감성적 품질을 추구한다. 에르메스의 시계는 기술적으로 정교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술은 결국 에르메스다운 시간의 감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게재호
105호(07/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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