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 메이커가 아닌 아이콘 메이커”

불가리 이사회 이사장 장-크리스토프 바뱅
  • 2026.07.10

    2026.07.16

  • By 편집부

불가리 워치는 1919년 주얼리 워치에서 시작해 불가리 불가리, 세르펜티, 옥토, 옥토 피니씨모로 이어지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크리스토프 바뱅은 이를 로마적 미감과 스위스 매뉴팩처 역량이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로 설명했다.


Jean-Christophe Babin 
-크리스토프 바뱅|불가리 이사회 이사장

불가리 CEO LVMH 워치 CEO를 거쳐 현재 불가리 이사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불가리는 현대 워치메이킹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준 브랜드 중 하나다. 불가리가 진정한 워치 매뉴팩처가 됐다고 느낀 순간은.

불가리 워치의 역사는 1919년 하이 주얼리 워치에서 시작됐다.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시크릿 워치가 대표적이다. 커버를 닫으면 브레이슬릿처럼 보이고, 열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 불가리는 주로 이 영역에 머물렀다. 1977년에는 불가리 최초의 본격적인 레귤러 워치인 불가리 불가리가 탄생했다. 고대 로마 주화에서 착안한 이 시계는 다이얼을 주화 중앙의 초상처럼, 베젤의 로고를 주화 가장자리의 문구처럼 배치했다. 이후 디아고노와 비제로원 워치도 성장에 기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불가리만의 차이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했다.

현재의 불가리 워치는 2010년 이후 다시 정비됐다. 세르펜티 투보가스는 골드와 다이아몬드 중심의 하이 주얼리 워치에서 벗어나 스틸, 스틸과 골드, 다이아몬드 버전까지 확장되며 여성용 레귤러 워치의 축이 됐다. 2012년 등장한 옥토는 로마 건축의 구조와 비례를 바탕으로 남성용 시계에서 불가리만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후 디바스 드림과 루체아가 더해지며 여성용 워치 포트폴리오도 넓어졌다. 결국 불가리는 2010년 이후 남성과 여성을 위한 워치 컬렉션을 사실상 새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디자인, 로마의 예술과 건축, 스위스 매뉴팩처 기술을 결합한 방식이다. 기술적 변화도 함께 진행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고급 무브먼트 제작 역량을 키웠고, 오늘날 옥토 라인에는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있다. 옥토 피니씨모는 초박형 무브먼트와 케이스 설계로 여러 차례 기록을 세우며 불가리의 기술력을 보여줬다. 여성용 시계에서는 솔로템포와 초소형 기계식 무브먼트 개발이 중요했다. 현재 불가리는 주얼리 워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여성용 레귤러 워치, 남성용 레귤러 워치를 모두 다룬다. 세르펜티, 불가리 불가리, 옥토라는 세 아이콘에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결합한 것이 지난 10여 년간의 가장 큰 변화였다.

 


불가리 워치메이킹을 대표하는 옥토 피니씨모. 올해 지름 37mm의 세련된 비율로 재탄생했다.


워치메이커의 정당성을 규정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는 미학인가, 아니면 기술적 전문성도 그만큼 중요한가

처음에는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전에 없던 형태와 보는 순간 갖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면, 무브먼트와 별개로도 성공할 수 있다. 시계는 매일 손목에 올려 바라보는 물건이기 때문에 먼저 보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충분하지 않다. 좋은 디자인에 좋은 무브먼트가 더해질 때 시계는 안팎이 모두 완성된다. 세르펜티 투보가스가 좋은 예다. 처음에는 쿼츠 모델로 성공했고, 이후 불가리는 솔로템포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기계식 세르펜티 투보가스를 더했다. 고객은 쿼츠와 기계식 중 선택할 수 있다. 쿼츠는 가격과 편의성에서 장점이 있고, 기계식 시계는 케이스백을 통해 무브먼트와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답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자인으로 먼저 시작할 수는 있지만, 무브먼트가 곧 따라와야 한다. 옥토도 그랬다. 옥토는 피니씨모 이전에 먼저 태어났고, 처음에는 불가리의 인하우스 솔로템포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이후 피니씨모가 등장하면서 옥토는 남성용 디자인 워치가 아니라 불가리의 기술을 대표하는 시계가 됐다. 무브먼트가 없었다면 디자인만으로 오늘날의 아이콘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희소성을 유지하는 문제는 어떻게 보나.

현재 불가리에게 생산량과 희소성의 균형은 큰 문제가 아니다. 불가리는 기본적으로 주얼러이며, 시계보다 훨씬 많이 판매한다. 주얼리와 시계는 같은 로마적 영감을 공유하더라도 서로 다른 카테고리다. 불가리는 볼륨 메이커가 아니라 아이콘 메이커다. 세르펜티는 착용자의 강한 캐릭터를 드러내고, 옥토는 기존 남성 시계의 규칙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만든다. 불가리는 모든 시장을 따라가기보다 뚜렷한 디자인의 계보를 선택했고, 그 결과 볼륨은 자연스럽게 제한됐다. 생산 구조도 이 방향과 맞다. 불가리는 스위스에 무브먼트 매뉴팩처, 케이스와 다이얼 관련 생산 기반, 조립 매뉴팩처를 갖추고 있지만, 생산 능력은 연간 10만 개를 훨씬 밑돈다. 따라서 희소성을 잃을 위험은 크지 않다. 불가리 워치는 더 성장할 수 있지만, 하이 주얼러라는 정체성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에 나설 수는 없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투르비용 플래티넘. 워치스 앤 원더스 2026 시점 기준 역사상 가장 얇은 '플래티넘' 투르비용 시계.


LVMH 시계 부문의 각 브랜드가 하나의 그룹식 모델로 수렴하지 않고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LVMH는 각 브랜드의 고유한 성격을 존중한다. 디올은 여성적 우아함, 루이 비통은 여행의 예술, 태그호이어는 모터스포츠와 크로노그래프의 역사에 기반을 둔다. 중요한 것은 각 브랜드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이해하고, 제품 개발과 커뮤니케이션, 부티크 설계, 무브먼트 개발이 같은 방향을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브먼트를 다루는 방식도 브랜드마다 다르다. 제니스는 고진동 무브먼트, 태그호이어는 크로노그래프와 스포츠 계측의 역사와 연결된다. 불가리는 시간의 주얼러다. 여성용 시계는 주얼리와 연결돼야 하고, 남성용 시계는 로마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건축물처럼 보여야 한다. 옥토 로마라는 이름도 그 연결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불가리는 스포츠보다 이탈리아적 라이프스타일과 영화, 예술가의 세계를 강조한다. 1960~1970년대 로마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이 불가리를 발견하며 영화와의 관계가 굳어졌고, 오늘날 배우와 아티스트 중심의 앰배서더 구성도 그 흐름과 맞닿아 있다. 불가리는 여성 고객의 비중이 크지만 남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남성은 시계를 구매할 뿐 아니라 이제 주얼리도 더 많이 착용한다. 그래서 불가리는 여성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남성적 차원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10년간 워치 산업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그 안에서 불가리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불가리 워치에 대해서는 매우 낙관적이다. 불가리는 의도적으로 큰 볼륨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아니며, 연간 생산량과 지난 10년간의 누적 고객 규모도 대형 브랜드에 비해 낮다. 그만큼 성장할 여지가 있다. 최근 4년간 불가리 워치의 성장세가 스위스 시계 수출 성장률보다 빨랐다. 더 높은 선호와 시장 점유율을 얻고 있다는 신호다. 앞으로도 불가리는 독점성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로마에서 출발한 배경은 경쟁 브랜드와 불가리를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로 남을 것이다. 주얼리 역시 불확실한 환경에서 강점을 가진다. 골드, 플래티넘, 귀한 젬스톤처럼 물질적 가치를 지니고, 아름답게 착용하는 즐거움과 장기적 가치에 대한 안도감을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얼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해온 가장 오래된 럭셔리다. 불가리는 주얼러이기 때문에 지위와 아름다움, 장인정신뿐 아니라 재판매 가능성까지 더 넓은 구매 이유를 제공한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에도 회복력을 가질 수 있다. 2026년 역시 쉽지 않지만, 불가리는 다시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새롭게 출시된 세르펜티 투보가스 스터드 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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