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와치와 오데마 피게의 협업으로 탄생한 로열 팝(Royal Pop)은
2026년 시계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출시 전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실제 판매가 시작되자 각국 스와치 매장 앞에는 다시 긴 줄이 생겼고, 일부
지역에서는 혼란과 충돌까지 벌어졌다. 리세일 사이트에는 곧바로 정가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이 붙었다. 로열 팝은 제품 하나를 넘어, 올해 시계
업계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 됐다.
이런 현상은 처음이 아니다. 스와치는 이미 2022년 오메가와 협업한 문스와치(MoonSwatch),
2023년 블랑팡과 협업한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Scuba Fifty Fathoms)를 통해 비슷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발매일마다 전 세계 스와치
매장 앞에는 컬렉터, 인플루언서, 리셀러가 몰렸다. 텐트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몸싸움과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목적은
제각각이었지만 이유는 같았다. 누구보다 먼저 손에 넣고 싶었던 것이다. 문스와치가 만든 충격은 특히 컸다. 당시 시세로 800만원이 넘던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이미지를 약 33만원짜리 스와치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물론 열기는 시간이 지나며 식었다. 새로운 에디션이
계속 나오면서 신선함은 줄었고,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델이 됐다. 희소성이 약해지자 폭발력도 함께 줄었다.
로열 팝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문스와치와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가 스와치그룹 내부 브랜드와의 협업이었다면,
이번 상대는 그룹 밖의 오데마 피게다. 게다가 오데마 피게는 현재 하이엔드 시계 시장에서 가장 강한 상징성을 지닌 브랜드 중 하나다. 이 차이가
로열 팝을 더 민감하고, 더 논쟁적인 협업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오데마 피게가 분명한 안전장치를 두었다는 사실이다. 로열 팝은 손목시계가 아니라 회중시계
형태로 출시됐다. 다양한 방식으로 장착하거나 거치할 수 있지만, 로열 오크를 그대로 축소하거나 변형한 손목시계는 아니다. 이는 오데마 피게가 자사의
핵심 자산인 로열 오크의 가치와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선으로 보인다. 만약 로열 오크 형태를 그대로 가져와 바이오세라믹 케이스와 시스템51(System51)
무브먼트를 조합한 뒤 60만원대에 판매했다면 반응은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을 것이다. 로열 오크의 기존 소유자와 잠재 고객 모두가 그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회중시계라는 형식은 그래서 중요하다. 협업은 허용하되, 로열 오크 영역은 직접 침범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와치와 오데마 피게는 왜 손을 잡았을까. 표면적으로는 니바크론(Nivachron) 헤어스프링의
공동 개발이라는 접점이 있다. 로열 팝에 탑재된 시스템51에도 니바크론 헤어스프링이 사용된다. 그러나 두 브랜드가 기대한 효과는 서로 다르다.
스와치 입장에서 로열 팝은 높은 수익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시스템51을 탑재한
스와치 AM51의 국내 가격은 24만3000원, 바이오세라믹 케이스를 적용한 가장 저렴한 쿼츠 모델은 12만9000원이다. 반면 시스템51과 바이오세라믹
케이스를 함께 사용한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는 60만5000원에 판매된다. 기존 스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지만 시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협업 모델은
스와치가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라이선스 계약이나 수익 배분 구조를 감안하더라도, 스와치가 얻는 금전적 이익과 홍보
효과는 상당하다.
문스와치와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가 보여준 것처럼 이 전략은 단순한 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평소 시계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매장 앞으로 불러냈고, 오메가와 블랑팡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도 만들었다. 시스템51은 기계식 시계를 낯설게 느끼던
소비자에게 비교적 쉬운 입구가 됐다. 스와치 입장에서는 판매와 홍보, 교육 효과를 동시에 얻은 셈이다.
이 전략은 최근 스와치그룹이 처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스와치그룹은 최근 수년간 주가 부진을 겪어왔고, 주얼리 부문 비중이 약한 사업 구조상 실적 개선에도 한계가 있다. 반대로 리치몬트는 주얼리 부문이 그룹 실적을 강하게 떠받치고 있다. 결국 스와치그룹에는 미래 소비 세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가 더 절실해졌다. 로열 팝 발매 전후로 스와치그룹 주가가 일시적으로 반등한 점은 시장이 이러한 전략에 반응했음을 보여준다.
로열 팝은 미래 세대에 대한 압박과 고민 속에서 나온 오데마 피게식 해법
오데마 피게의 계산은 조금 다르다. 단순히 라이선스 수익을 노리고 협업에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데마 피게 CEO 일라리아 레스타(Ilaria Resta)는 로열 팝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전통 워치메이킹 기술의 보존과 전수 프로젝트에 전액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가 젊은 세대에게 기계식 시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결국 오데마 피게가
노린 것은 미래 세대와의 접점 확대다.
오데마 피게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가운데 비교적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혁신성을 강조하더라도, 전통적인 하이엔드 브랜드의 방식만으로는 스와치 같은 대중적 파급력을 얻기 어렵다. 로열 팝은 오데마 피게가
기존 고객층 바깥으로 시선을 넓힌 프로젝트다. 스와치의 대중성, 팝한 이미지, 즉각적인 확산력을 빌려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를 다시 노출한 셈이다.
물론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에서는 브랜드 가치 희석과 희소성 하락을 우려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이 더 넓은 소비자와 만나는
실험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로열 팝을 둘러싼 논쟁은 제품 자체만큼이나 뜨겁다.
분명한 점은 있다. 로열 팝은
디지털 세대가 소비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시계 업계가 어떤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과거 최대 럭셔리 소비 시장이었던 중국의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브랜드들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미래 세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로열 팝은 그 압박과 고민 속에서 나온 오데마 피게식 해법이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미래 세대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게재호
105호(07/08월호)
Editor
구교철
© Sigongsa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l rights reserved. © by Ebner Media Group GmbH & Co. KG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