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VING TIME

자동차와 시계가 오랫동안 맺어온 긴밀하고도 복합적인 관계
  • 2026.09.09

    2026.09.09

  • By 유현선

밀레밀리아에 함께한 모터스포츠의 전설 재키 익스(왼쪽)와 쇼파드 공동 사장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자동차를 향한 두 사람의 열정은 단순한 브랜드 앰배서더 관계를 넘어선다.


시계와 레이싱카는 유난히 잘 어울린다. 두 분야 모두 혁신을 거듭하며 한계를 넓혀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계가 시간을 최대한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발전했다면, 자동차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빨라졌다. 그래서 둘은 완벽한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중문화의 영향

시계 애호가라면 자동차와 시계라는 두 단어에서 1971년 영화 〈르망〉의 스티브 매퀸과 그의 손목에 채워진 태그호이어 모나코를 떠올리기 쉽다. 빠른 자동차와 매력적인 드라이버, 그리고 그 장면을 완성하는 멋진 시계. 속도감을 강조하려면 시계는 자연스럽게 크로노그래프여야 할 것 같다. 얼핏 완벽한 조합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레이싱 드라이버에게 중요한 것은 랩타임이다. 일단 레이스가 시작되고 나면 현재 시간이 몇 시인지는 별 의미가 없다. 주행 중 시간을 확인할 여유가 있다면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충분히 빠르게 달리고 있나?’ 초창기 밀레밀리아와 타르가 플로리오 같은 유명 로드 레이스에 출전한 자동차도 이를 잘 보여준다. 엔진 회전수를 확인하는 회전계는 있었지만 속도계는 없는 경우가 있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달리는 것이 목표인 레이스에서 현재 속도를 확인할 이유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시계를 향한 열정에는 국경도 경계도 없다. 체코 대통령 페트르 파벨이 2026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 출발 현장에서 클래식카를 살펴보고 있다.


물론 크로노그래프는 유용한 계측 도구다. 특히 전자식 계측 장비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더욱 중요했다. 다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쪽은 드라이버보다 피트 크루였다. 실제 작업에서는 손목시계 크기의 크로노그래프보다 푸셔와 다이얼이 큰 스톱워치가 훨씬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라이버가 트랙에서 시계를 차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재키 스튜어트 경이 롤렉스의 앰배서더가 되기 전, F1 머신에 앉아 데이트저스트를 착용한 모습도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 레이스 직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그저 평소 습관이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주행 중 시계를 들여다볼 여유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체코 시계 브랜드 로봇(Robot)의 창립자이자 오너 요제프 자이체크가 2026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에서 1941년형 BMW 327을 몰고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을 달리고 있다.


트랙 밖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이버 워치는 오늘날에도 다이브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보조 계기로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자동차 안에서 손목시계가 비슷한 역할을 할 일은 드물다. 대시보드 시계가 고장 나 아이들을 리틀리그 연습에 몇 분 늦게 데려갈 상황이라면 모를까. 고속도로에서 크로노그래프의 타키미터를 이용해 자동차 속도계가 정확한지 확인해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 역시 흔한 일은 아니다.


WATCHES & CARS

자동차와 시계가 만나는 방식은 무척 다양하다. 여기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네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쇼파드 밀레밀리아 클래식 파티나

쇼파드는 이 밀레밀리아 모델의 루센트 스틸 케이스에 DLC 코팅을 입혀, 마치 이미 밀레밀리아를 전속력으로 달려낸 듯 자연스럽게 에이징된 인상을 연출했다. 짙은 케이스는 새먼 컬러 다이얼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는 ETA A322-11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하며, 파워 리저브는 54시간이다. 1만 2800달러(약 1800만원)



B.R.M V6 세르컬러 오렌지

카본 다이얼 너머로 드러나는 쇼크 업소버부터 레이싱카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티타늄 케이스에는 세라믹 처리를 적용해 체크 패턴을 완성하며 모터스포츠 분위기를 한층 강조했다. 100m 방수 성능을 갖추고, 내구성이 검증된 ETA 2824-2 기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5994달러(약 840만원)



로봇 마이너 에머슨 피티팔디

F1 월드 챔피언 2회와 인디 500 우승 2회를 기록한 에머슨 피티팔디가 공동 디자인한 체코 시계 브랜드 로봇 크로노그래프. 라 주 페레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하며, 티타늄 케이스에는 전설적인 로터스 F1의 존 플레이어 스페셜 리버리를 연상시키는 컬러 조합을 적용했다. 단 100개만 제작하고 모든 시계에 피티팔디가 직접 서명했다. 방수 성능은 100m. 6280달러(약 880만원)



랄프 로렌 오토모티브 더블 투르비용

랄프 로렌이 소유한 1938년형 부가티 타입 57SC 애틀랜틱 쿠페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이다. 앰보이나 벌 우드로 제작한 베젤과 블랙 다이얼을 조합하고, 다이얼 위 두 개의 투르비용으로 복잡한 기계적 구성을 드러낸다. 72시간 파워 리저브를 통해 긴 주행을 떠올리게 하는 오토모티브 콘셉트도 이어간다. 10만 8000달러(약 1억 5200만원)


INTERVIEW 1

A CONVERSATION WITH JOSEF ZAJÍČEK

요제프 자이체크와의 인터뷰



 

시계 업계에서 자동차와 시계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연결해온 인물이 있다면 요제프 자이체크다. 자동차와 시계를 향한 개인적인 열정은 그의 사업 전반을 관통한다. 그는 두 분야가 만났을 때 그 매력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오토드롬 모스트의 오너이면서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와 시계 브랜드 로봇(Robot)을 설립했다. 자동차와 시계에 대한 열정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평생 자동차 산업에서 일했다. 스코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르쉐, 애스턴마틴, 오펠 등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직접 공급하는 여러 제조 회사를 설립했다. 몇 년 전 이 회사들은 모두 매각했고 지금은 레이싱 서킷 오토드롬 모스트만 보유하고 있다. 클래식카 역시 늘 좋아했다. 처음에는 혼자 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조금씩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다니기 시작했고, 그렇게 체코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 랠리가 탄생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독특한 콘셉트의 행사라고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로봇 프라하–오사카 엑스포 2026 원정(ROBOT Expedition Prague – Osaka Expo 2026)’이라는 이름으로 프라하에서 일본까지 달렸다. 한 달 동안 11개국을 거쳐 총 1만 5000km를 이동했고, 다행히 모든 참가자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동차 관련 활동과 병행해 8년 전 시계 매뉴팩처 보헤마틱을 설립했고, 현재 ROBOT이라는 이름으로 시계를 제작하고 있다. 나는 클래식카와 시계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각각에 담긴 이야기뿐 아니라 이런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성향도 비슷하다. 클래식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와 편안함, 시계와 시가, 좋은 와인을 즐긴다. 내가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런 분위기다.


F1 월드 챔피언에 두 차례 올랐고 인디 500에서도 두 차례 우승한 에머슨 피티팔디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함께 시계도 만들었는데,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에머슨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어느 날 함께 로봇 한정판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실제 제품으로 이어졌다. 100개만 제작했는데 이미 완판됐다.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를 계속할 생각이다. 현재 F1 역사에서 중요한 여러 인물과도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업계에서 활동한 이력만큼 이 세계의 인물들과도 자연스럽게 접점이 많다. 앞으로 새로운 한정판을 기대해도 좋다.


로봇 에어로다이내믹은 하이엔드 워치메이킹과 전설적인 체코 자동차 브랜드 타트라(Tatra)를 연결한다. 이 콘셉트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로봇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에어로다이내믹은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매우 앞선 공기역학적 자동차를 제작했던 타트라와 연결된 모델이다. 나 역시 타트라 97을 한 대 가지고 있다. 불과 530대만 생산된 차인데, 역사도 흥미롭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베를린 모터쇼에서 폭스바겐 비틀의 프로토타입과 양산형 타트라 97이 나란히 전시된 적이 있다. 이후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이 타트라의 여러 기술적 아이디어를 가져가 비틀의 대량생산에 적용했다. 전쟁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폭스바겐으로부터 600만 독일마르크(현재 기준 약 50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에 큰 매력을 느낀다. 앞으로도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로봇 시계와 계속 연결해나가고 싶다.


로봇의 앞으로의 계획은.

계획은 많다. 다만 실제로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을지는 브랜드의 성장과 판매 실적에 달려 있다. 몇 달 전에는 새로운 모델 로보틱 원을 출시했다. 로봇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컬렉션을 확대할 예정이며, 스리 핸즈 무브먼트를 탑재한 로보틱 원도 선보일 계획이다.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로보틱 투도 준비 중이다. 동시에 기존 마이너 모델도 디자인을 다듬고 있으며, 내년에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고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시계를 개인화할 수 있는 서비스도 계속 강화하고 싶다. 로봇의 가장 큰 강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며, 실제 고객들도 이 서비스를 높이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상당한 규모의 자동차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꼭 갖고 싶은 자동차가 있는가.

클래식카 컬렉션을 더 늘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규모를 줄이고 정말 상징적인 모델만 남기려고 한다. 현재는 타트라와 BMW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꿈꾸는 차가 하나 있다면 이탈리아 자동차다. 마세라티와 란치아, 알파 로메오 같은 브랜드의 디자인과 역사는 정말 놀랍다. 가까운 미래에 이탈리아 차 한 대는 꼭 구입할 생각이다.


F1 월드 챔피언 2회와 인디 500 우승 2회를 기록한 에머슨 피티팔디는 자동차뿐 아니라 고급 시계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 사진에서는 자신의 서명을 새긴 로봇 마이너를 착용했다. 


의외로 비실용적 관계

하지만 바로 여기서 둘의 진짜 관계가 드러난다. 자동차와 시계를 잇는 것은 실용성보다 열정이다. 둘 모두 더 멀리 나아가고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기계이며, 사람의 손으로 설계하고 제작해 성능을 끊임없이 개선해왔다. 두 분야의 관계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결합이라기보다 서로 잘 어울리는 두 존재 사이의 오랜 연애에 가깝다.

이는 포뮬러 1부터 밀레밀리아와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까지 다양한 자동차 행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를 만든 요제프 자이체크는 체코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자동차 애호가다. 그는 슈퍼바이크 월드 챔피언십, FIA 유러피언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 나스카(NASCAR) 유로 시리즈 등이 열리는 서킷 오토드롬 모스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체코 하이엔드 시계 매뉴팩처 로봇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로봇(Robot)이라는 이름은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와 연결된다. 차페크가 1921년 발표한 SF 희곡 <R.U.R.>을 통해 널리 알려진 ‘robot’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브랜드는 이를 혁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Rolls-Royce-Phantom II


롤스로이스 팬텀 II

롤스로이스 팬텀 II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자동차다. 1929년 등장한 이 모델은 기본 휠베이스가 150인치에 달했고, 7.7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1935년까지 생산됐으며, 롤스로이스가 제작한 1,681개의 섀시에는 각 오너가 선택한 코치빌더가 맞춤형 차체를 얹었다. 이 정도의 자동차를 소유했다면 그에 어울리는 시계를 찾고 싶은 것도 자연스럽다. 한 팬텀 II 오너는 체코 시계 브랜드 로봇에 자신의 자동차와 어울리는 맞춤 시계를 의뢰했다. 자동차의 코치빌더처럼, 로봇 역시 오너의 요구에 맞춰 시계를 완성했다. 다이얼에는 롤스로이스 로고와 모델명을 배치했고, 날짜창의 테두리는 롤스로이스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 형태를 본떴다. 정교하게 설계한 핸드 역시 눈에 띄는데, 초침의 카운터웨이트에는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를 적용했다. 케이스와 버클 전면에는 팬텀 II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유행을 반영한 기하학적 패턴을 인그레이빙했다. 무브먼트는 라 주 페레 셀프와인딩 G100을 베이스로 삼았다.



태그호이어 모나코는 초기 모델 가운데 하나(위)이든 최신 모델이든 언제까지나 레이스 트랙과 연결될 것이다.


자동차 수집가의 시계 브랜드

자이체크가 자동차 수집가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는 특히 BMW와 체코 자동차 브랜드 타트라(Tatra)를 집중적으로 수집한다. 타트라는 로봇 에어로다이내믹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초의 양산 공기역학 자동차로 꼽히는 타트라 77이 직접적인 영감의 원천이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시계로 이어진 사례는 더 있다. 쇼파드 공동 사장 칼-프리드리히 슈펠레가 1988년 밀레밀리아와 파트너십을 시작한 배경에도 자동차를 향한 개인적인 애정이 있었다. 이 관계에서 탄생한 밀레밀리아 시계는 이후 쇼파드를 대표하는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자동차 수집가이기도 한 랄프 로렌 역시 자신의 자동차에서 얻은 영감을 시계 컬렉션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왔다.

반대로 자동차 브랜드가 시계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경우도 많다. 다만 모든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시작된 IWC와 메르세데스-AMG처럼 장기간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여러 시계 브랜드를 거치는 자동차 회사도 있다. 페라리는 지난 40여 년 동안 까르띠에, 지라드 페리고, 파네라이, 위블로와 차례로 협업했고 최근에는 리차드 밀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애스턴마틴 역시 예거 르쿨트르, 태그호이어, 지라드 페리고를 거쳐 현재는 브라이틀링과 협력하고 있다.



롤렉스 데이토나의 헤리티지는 레이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공통점

자동차와 시계가 만나는 또 하나의 지점은 디자인이다. 자동차와 관련된 시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쇼파드 밀레밀리아와 로봇 에어로다이내믹처럼 자동차 자체에서 영감을 얻은 모델, 태그호이어 모나코와 롤렉스 데이토나처럼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의 역사 속에서 관계를 구축한 모델, 그리고 자동차 브랜드와 시계 브랜드가 공동으로 완성한 모델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방식이 가장 까다롭다. 두 유명 브랜드가 지닌 고유한 형태와 특징을 하나의 시계 안에 녹이면서도 어느 한쪽의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네 번째 유형을 더한다면 아예 레이싱카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시계를 꼽을 수 있다. 리차드 밀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접근이다. 첨단 소재와 정교한 무브먼트를 사용해 가볍지만 견고한 시계를 만드는 방식은 트랙에서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레이싱카와 맞닿아 있다.


리차드 밀의 시계는 레이싱카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페라리와 공식 파트너십도 맺었다.


동일한 열정

올드타이머 익스프레스에서는 자동차만큼 시계도 중요한 주인공이었다. 많은 참가자가 자신의 클래식카와 함께 손목 위 시계를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단순한 과시는 아니었다. 자동차와 시계에 얽힌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었다. 모든 자동차와 시계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고, 두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의 취향을 반영한 특정 시계를 오랫동안 찾아다닌 사람도 있었고, 자동차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시계를 얻기 위해 맞춤 제작을 의뢰한 사람도 있었다. 자동차와 시계라는 서로 다른 두 물건의 연애가 어느 순간 하나의 관계로, 나아가 결혼으로 발전하는 셈이다. 시계에는 자동차가 갖지 못한 장점도 있다. 자동차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주차해야 하지만 시계는 어디든 함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기계 안에는 성능을 끊임없이 개선해온 인간의 기술적 독창성, 디자인, 그리고 오랜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 결국 자동차와 시계의 관계는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실용적이지 않다. 하지만 두 분야를 움직여온 열정은 동일하다. 바로 그 열정이 자동차와 시계를 오랫동안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준다.


INTERVIEW 2

TALKING CARS AND WATCHES WITH MARCUS EILINGER

디자이너 마르쿠스 아일링거와 나누는 자동차와 시계 이야기



 

마르쿠스 아일링거는 현대 시계 디자인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을 모르더라도 그가 디자인한 시계를 한 번쯤 소유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IWC, 튜더, 모저앤씨, 라이카, 로봇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해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동차에도 깊은 애정을 쏟아온 그는 자동차와 시계 디자인의 접점을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자동차와 시계 사이에는 유독 긴밀하고 열정적인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두 분야를 이어주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많은 시계 브랜드가 자동차 브랜드와 협업해왔고 지금도 새로운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왜 협업하는가다. 자동차와 시계에는 모두 인간적인 면이 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움직임을 경험하는 우리의 삶에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가 이 둘을 결합하려 하지만, 감정보다는 사업적인 전략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협업은 오래 기억되기 어렵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은 마케팅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정신이다. 감정과 정밀함, 욕망에 대한 공통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는 두 분야가 만날 때 비로소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례는 흔치 않다. 양쪽의 특징이 모두 자연스럽게 살아 있으면서도 억지스럽지 않고 오래 기억되는 결과를 만드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자동차 디자인은 당신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는가. 

자동차는 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줬다. 그 시대가 품었던 꿈과 낙관주의, 대담함, 때로는 반항적인 기운까지 자동차에 담겨 있다. 자동차와 함께 성장하며 변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더 이상 단순한 기계로만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기억의 일부가 된다. 내게 자동차는 계속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한 줄의 선이나 곡선, 비율만으로도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감정과 기억은 자연스럽게 내 디자인에 스며든다. 특정 자동차의 형태를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과거에 나를 움직였고 지금도 내 작업에 영향을 주는 감각을 포착하려고 한다.


자동차와 시계를 디자인하는 과정에도 공통점이 있는가.

자동차는 공간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떻게 보이고, 세상 속을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 반면 시계는 훨씬 작고 개인적이다. 피부 가까이, 손목 위에 머무는 만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심하게 바라봐야 한다. 시계를 디자인할 때는 정밀함과 감정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작은 면 하나와 빛의 반사 하나까지 집중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래도 두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다. 빛과 소재를 다루는 방식, 각각의 형태가 만나고 나뉘는 방식이 모두 중요하다. 자동차와 시계 모두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만 달라져도 전체 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당신이 디자인한 시계에서는 종종 속도감이 느껴진다. 시계에 속도감을 어떻게 담는가. 

속도는 움직이는 모습만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긴장감과 끌림, 에너지에서도 나온다. 좋은 디자인은 보는 사람을 끌어당겨야 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을 정도로. 손끝에서 형태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곡선과 표면만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면 그 안에는 움직임이 생긴다. 여기엔 섹시함도 필요하다. 단지 눈으로 보는 디자인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와 개인적으로도 깊은 인연이 있는가.

빈티지 자동차는 40년 넘게 내 삶과 함께했다.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한 물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한 동반자였다. 직접 운전하고 수리하고 복원하면서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와 비틀, 포르쉐 356에는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이런 자동차를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 하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다.


꿈꾸는 자동차가 있다면. 

재규어 XK. 성능과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우아함을 지닌 자동차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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