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NOVELTY |
세계 최대의 워치·주얼리 박람회인 바젤월드가 중대한 기로에섰다. 지난 7월 스와치그룹이 공식적으로 바젤월드 2019 불참을 알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바젤월드에는 작년보다 22% 감소한 8만1200명만이 찾아 관람객 집계 수치 면에서는 실적이 저조한 편이었다. 박람회장의 메인 홀인 1.0을 가득 채웠던 스와치그룹의 15여 개 브랜드가 사라지면서 바젤월드가 축소되거나 심지어 수년 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스와치그룹의 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바젤월드의 변화는 예정되어 있었다. 바젤월드를 주관하는 MCH그룹 CEO 레네 캄은 새로운 팀과 새로운 편의시설, 그리고 많은 아이디어가 이미 마련된 상태이기 때문에 스와치그룹의 결정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 일부는 올해 바젤월드에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다. 예를 들어 홀 1.0 남관은 독립시계 브랜드를 위한 ‘레 아틀리에’의 하이라이트를 선보이는 장으로 변모했고 홀 1.1은 워치메이킹에 관한 전시회인 ‘메티에 드 오롤로저’를 개최하는 ‘더 루프’로 활용되었다. 홀 1.2는 주얼리 브랜드를 위한 전문관으로 탈바꿈하고 주얼리 신제품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패션쇼를 마련하기도 했다. 편의시설도 다양해졌다. 전시자와 방문객은 테이크아웃부터 3성급 전용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식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기자를 위한 지원도 많아졌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동선이 좋아지고 집중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바젤월드의 터줏대감격인 하이엔드 브랜드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파텍 필립, 쇼파드, 롤렉스는 “소규모 시계 브랜드를 포함해 시계 산업의 전통성과 발전을 이어가기 위해 바젤월드는 의미가 있으며, 바젤월드에서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이며 전통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업계의 전망도 여전히 밝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 FH에 의하면 작년 스위스 시계 산업도 6.3% 성장해 212억스위스프랑(약 24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년에 SIHH와 기간을 맞춰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릴 바젤월드는 더욱 혁신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홀의 효과적인 재배치는 물론, 디지털 서비스와 이벤트 및 체험존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목표는 고전적인 무역 박람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케팅과 트렌드를 경험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기능해 시계와 주얼리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체’가 되는 것. 바젤월드의 새로운 매니징 디렉터로 취임한 마이클 로리스-멜리코프는 "이러한 전략은 참가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우리는 열정으로 변화를 헤쳐나갈 것이다”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바젤월드의 진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롭게 신설한 프레젠테이션 공간 ‘블루룸’에서 프레스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바젤월드 매니징 디렉터 마이클 로리스-멜리코프.
주얼리 신제품 패션쇼가 열리는 모습.
바젤월드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약속한 롤렉스와 파텍 필립.
박람회장 내 새롭게 마련한 식음서비스.
진정한 워치메이킹에 대한 고민
바젤월드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에 응수하듯, 여러 브랜드에서 워치메이킹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SIHH 브랜드가 컴플리케이션으로 회귀함으로써 그 답을 찾았다면, 바젤월드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나타난 점이 흥미롭다. 우선 파텍 필립은 칼라트라바 위클리 캘린더를 위해 기존 324 칼리버를 발전시키며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개량했다. 기계 가공보다 정밀하게 고효율 부품 제작이 가능한 리가(LIGA) 공법을 기어트레인의 3번 휠에 적용해 톱니바퀴를 갈고리 모양으로 촘촘하게 만들고, ‘킥스타터’ 메커니즘을 적용한 것. 갈고리 모양 톱니바퀴는 초침과 연결된 피니언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324 기반 무브먼트처럼 인다이렉트(Indirect)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초침 떨림 현상을 방지한다. 킥스타터는 시간을 설정할 때에는 초침을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놓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다. 내로라하는 하이엔드 매뉴팩처가 다름아닌 애호가의 입장에서 조정의 애로사항을 똑똑히 짚은 것이다. 불가리는 다섯 번째 울트라신 신기록을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로 달성하는 동시에, ‘이탈리아 리나씨멘토(르네상스)’를 올해의 테마로 선정해 불가리 워치메이킹의 정체성을 자신의 뿌리에서 되찾고자 했다. 시티즌은 연오차 ±1초의 정확성을 달성한 칼리버 0100을 손목시계용으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며, 작년부터 이어진 ‘시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했다. 자사의 워치 아이콘 J12의 20주년을 앞두고 셀프와인딩 라인업을 전면에 내세운 샤넬도 그중 하나. 2016년 매뉴팩처를 인수하고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속속 개발하며 진정한 워치메이커로서 거듭나는 중이다. 이런 자세가 있는 한 바젤월드는 물론 시계업계의 미래도 여전히 밝다.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위클리 캘린더 Ref. 5212A-001.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젊어진 분위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함께 시계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하이엔드 브랜드 스포츠 워치의 인기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바젤월드에서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그들의 취향을 의식한 신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그 경향은 올해 가장 두드러졌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과 컴플리케이션에 각각 신제품을 선보인 파텍 필립이 좋은 예다. 칼라트라바 위클리 캘린더는 무려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에 소가죽 스트랩을 매치했고, 알람 트래블타임은 2015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파일럿 트래블타임의 스포츠 디자인에 기반한다. 작년부터 젊은 신사를 위해 L.U.C 엔트리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변경한 쇼파드는 올해도 그 분위기를 이어갔다. 롤렉스가 요트-마스터 라인업에 추가한 지름 42mm 모델, 분트 방식 가죽 스트랩과 나토 스트랩을 추가한 튜더의 블랙 베이 크로노 S&G도 대표적이다.
젊은 신사를 위한 쇼파드 L.U.C XPS 트위스트 QF 블루 다이얼 버전.
튜더 블랙 베이 크로노 S&G의 분트 스트랩 버전.
2017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레트로 트렌드와 맞물려 다이얼 컬러는 날이 갈수록 다채로워진다. 블루와 그린을 넘어 브라운과 그레이 컬러도 자주 보이며, 그러데이션과 선레이 등 세공도 과감해졌다. 올해는 ‘옴브레’라 불리는 독특한 다이얼도 등장했다. 다이얼 컬러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그러데이션과 빛을 받으면 햇살무늬처럼 퍼지는 선레이가 합쳐진 듯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자랑한다. 가장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예시는 롤렉스의 데이-데이트 36 신제품으로 블루, 그린, 브라운 컬러 옴브레 다이얼 라인업을 구성했다. 오리스 역시 아퀴스 데이트에 그린과 브라운, 민트 다이얼 버전을 선보이며 적극적으로 컬러를 활용했다. 신선한 컬러의 다이얼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뜻이다.
오리스 아퀴스 데이트의 브라운 다이얼 버전.
롤렉스 데이-데이트 36 신제품의 그린 옴브레 다이얼.
일상을 위한 여성시계
여성시계 라인업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특히 기존의 인기 컬렉션을 일상에서 편히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변화시킨 예가 눈에 많이 띄었다. 불가리의 세르펜티 세두토리 컬렉션과 쇼파드 해피 스포츠 오벌 모두 새로운 브레이슬릿을 적용하며 독립적인 라인업을 이뤘다. 태생부터 독립적인 현대 여성을 위한 시계를 지향한 파텍 필립 트웬티포는 올해 탄생 20주년을 맞아 기존 쿼츠 사각형 케이스에 라운드 케이스의 셀프와인딩 라인업을 새롭게 추가했다. 여성의 기계식 시계 선호도가 높아지며 여성시계 자체도 화려한 액세서리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점점 실용적인 도구로 변모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쇼파드 해피 스포츠 오벌 브레이슬릿 버전.
불가리 세르펜티 세두토리.
게재호
62호(2019년 05/06월)
Editor
유현선, 김도우, 장종균, 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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