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니콜라스 폴크스(Nicholas Foulkes), 프랑스 미술사학자 겸 루브르 박물관 유물 부문 책임자 올리비에 가베와 이론물리학자 크리스토프 갈파르(Christophe Galfard), 그리고 바쉐론 콘스탄틴 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앙 셀모니.
니콜라스 폴크스 물리학자의 시각에서 라 꿰뜨 뒤 떵이 흥미로운 이유는.
크리스토프 갈파르 시간을 '재는 방식'은 우리 조상들이 하늘의 별을 관측하면서 시작됐다. 세상에는 주기(cycle)가 있다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 인간은 사물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몰랐다. 재미있게도 아주 오래전의 하늘 지도는 360도로 나뉘었고, 기원전 수 세기 무렵에는 한 도(degree)를 60분, 다시 60초로 나눴다. 그 분할 체계가 지금 우리가 보는 시계의 바탕이 됐다.
폴크스 라 꿰뜨 뒤 떵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하는 이유는.
올리비에 가베 동시대적 창작물을 통해 고대의 어려운 개념까지 스스로 투영할 수 있다. 숫자와 이론이 빠르게 언급돼도, 이렇게 구체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존재가 곁에 있으면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루브르 박물관이 좋은 박물관임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폴크스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 않나.
갈파르 시계라고만 보긴 어렵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층적으로 질문하는 오브제에 가깝다. 별을 보고 시간을 알던 조상들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대상이다.
폴크스 예술적 측면과 고도의 기술적 측면의 '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크리스티앙 셀모니 우리 메종은 기념주기를 맞을 때마다 특별한 시계로 기념해왔다. 과거에는 가장 복잡한 시계를 선보였고, 10년 전엔 그 기록을 또 갱신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우리는 설립 초기에 이미 복잡기능과 마감에서 전문성이 높았고, 조형 예술 공예에도 힘을 쏟았다. 기술성과 장식 공예 사이의 균형을 분명히 세웠다. 수 세기 이어온 기예를 보존하고 계승하면서도 21세기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다.
원자시계와 라 꿰뜨 뒤 떵은 서로 다른 방식의 작품이다. 하나는 시간을 정의하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초월한다.
폴크스 라 꿰뜨 뒤 떵은 움직이고, 들리고, 경이를 준다. '무시간성'은 어디서 오는가.
셀모니 오늘날 디지털 생태계는 시간적 여유를 파고든다. 오늘 새로워도 내일 낡아지는 세상이다. 우리는 '시간에게 시간을 주라'는 역설을 제시하고 싶었다. 손의 지성, 즉 수십 년의 인내가 깃든 수공(手工)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것. 그게 라 꿰뜨 뒤 떵이 제안하는 독해다.
갈파르 디지털은 빠른 교체를 전제하지만, 장인정신은 서로 다른 시간 척도를 살아간다. 그 차이가 '무시간성'의 감각을 준다.
가베 중국과 이슬람권 등에서도 오토마통 전통은 오래 이어져왔다. 관람객 다수는 라 꿰뜨 뒤 떵을 원래 전시품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시간의 층위를 자연스럽게 느낄 것이다.
폴크스 원자시계와 라 꿰뜨 뒤 떵의 연결점이 있다면.
셀모니 1970년대 쿼츠의 정확도로 기계식 시계가 설 자리를 잃었지만, 1980년대 말 컬렉터와 애호가들이 기계식 시계를 부활시켰다. 오늘날 하이 워치메이킹에서 다수가 시계에서 절대적인 정확성보다 손끝에서 탄생한 아름다움을 더 사랑한다.
갈파르 아이러니하게도, 기계식 시계의 정밀화가 "우주의 시간은 절대가 아니다"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다시 그 시간을 우리 손목으로 되돌려 개인의 시간으로 만든 점이 아름답다.
폴크스 왜 인간 형상의 오토마통이 중요했나.
셀모니 인간적 제스처로 시간을 가리키는 휴머니즘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실제 시간은 다이얼로 읽되, 오토마통의 몸짓은 별자리를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시절을 시적으로 환기한다. 이 오브제의 주된 임무는 초정밀 시각 계측이 아니라, 시간을 더 인간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데 있다.
폴크스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점과 라 꿰뜨 뒤 떵의 최고 미덕을 꼽자면.
셀모니 인간의 손이 지닌 가치를 믿는다는 점, 그리고 라 꿰뜨 뒤 떵이 오늘과 내일을 가로질러 기능하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갈파르 원자시계와 라 꿰뜨 뒤 떵은 서로 다른 방식의 작품이다. 하나는 시간을 정의하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초월한다. 두 이야기가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 가장 아름답다.
가베 핵심은 창의성이다. 세상에 창의성이 있는 한, 이런 작품은 계속 의미를 가질 것이다.
게재호
101호(11/12월호)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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