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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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LL OF FAME - PART 4

내용

1960's 

변혁의 시대

1969년 앞다투어 발표된 자동 크로노그래프는 기계식 시계의 새 장을 연다. 하지만 같은 해 일본의 세이코가 개발한 쿼츠 무브먼트는 기계식 시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1950년대 등장한 스쿠버 다이빙은 점차 진화하며, 고심도 잠수법으로 고안된 포화잠수 기술은 다이버 워치의 진화에 영향을 준다. 포화잠수 기술에 사용하는 헬륨가스는 분자 구조가 매우 작아 글라스를 통과해 케이스 내부로 침투한다. 다이버가 탐사 후 수면으로 올라오면 자연스레 수압도 약해진다. 이때 케이스에 머물던 헬륨가스는 팽창하며 글라스를 파손시킨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헬륨가스 배출밸브다. 이를 갖춘 다이버 워치는 오메가의 씨마스터 플로프로프.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가지치기 모델인 씨드웰러 1665 모델은 600m의 방수성능을 갖추고 시판용이 아닌 프로페셔널 다이버에게만 먼저 공급되었다. 특수 용도로 개발된 롤렉스의 딥 씨 스페셜은 이미 수심 10,000m의 세계에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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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로바 아큐트론 스페이스뷰(1960년)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 기계에서 전자로 넘어가는 과도기 형태의 하나가 소리굽쇠 시계, 일명 음차(音叉)시계다. 부로바가 개발한 아큐트론은 소리굽쇠 모양의 판을 통해 생성되는 일정한 진동 방식을 이용한 시계다. 정확성을 의미하는 ‘accuracy’와 전자를 의미하는 ‘electron’에서 차용해 이름을 지었다. 시계 생산 방식을 전자 분야에서 모색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아큐트론을 대표하는 건 대칭으로 놓인 두 개의 코일과 초록색 전자기판이 드러날 수 있도록 투명한 다이얼을 사용한 스페이스뷰 모델이다. 아큐트론은 다른 메이커에 라이선스를 주는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했지만, 쿼츠 등장 이후 경쟁력 약화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한다. 하지만 아큐트론의 소리굽쇠는 부로바의 로고를 남긴 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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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로바 아큐트론 스페이스뷰 리미티드 에디션

아큐트론 탄생 5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디자인을 살리는 것은 물론 아큐트론의 핵심인 소리굽쇠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부로바의 고향인 미국에는 아큐트론 마니아와 그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수리점이 존재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 모델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크라운의 위치다. 케이스의 우측 부분 대신 케이스 백을 선택했다. 초기 아큐트론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초기 모델은 정확성을 자신한 나머지 크라운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곧 크라운이 달린 모델이 등장했는데, 전자 시계의 시대를 앞두고 있던 시기의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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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모바도 뮤지엄 워치


바우하우스 사조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예술가 네이던 조지 호윗(Nathan George Horwitt)이 모더니즘, 미니멀리즘을 시계로 표현한 것이 그 시작이다. 특징은 다이얼 12시 방향에 해와 같은 심벌이 오직 하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947년 처음 선보일 당시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1960년 뉴욕의 모마(MoMA)에 전시되고 이듬해 모바도가 이 디자인을 이용해 시계를 생산하기 시작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점은 모바도가 이 디자인을 호윗의 허락 없이 생산을 계속해왔다는 것. 1975년이 되어서야 양측이 저작권에 합의를 보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모바도가 묻혀버릴 뻔한 명장 디자인을 살려낸 셈이며, 이후 모바도에서 뮤지엄 워치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생산한다. 아쉽게도 기계식 무브먼트는 탑재되지 않는다. 대신 스위스산의 쿼츠 무브먼트가 뮤지엄 워치의 시계를 움직인다. 쿼츠 덕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명작 디자인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편 1969년은 시계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잭 호이어는 윌리 브라이틀링을 만나 자동 크로노그래프 생산의 뜻을 확인한다. 훗날 잭 호이어의 술회에 따르면, 일체형 크로노그래프를 만들고 싶었으나 당시 자금과 촉박한 시간 때문에 자동 무브먼트에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올리는 형태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이들은 크로노그래프를 담당할 뒤부아 데프라와 얇은 두께가 강점인 마이크로 로터 자동 무브먼트를 담당한 뷰렌(그 당시 해밀턴과 합병되어 해밀턴-뷰렌)으로 연합 전선을 형성해 공동 개발의 형식을 취한다. 모듈형으로 개발된 덕분(?)에 1969년 1월 등장했고, 최초의 자동 크로노그래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세이코는 칼리버 6139를 5월(추정) 발표했고, 제니스는 엘 프리메로를 가을(9월 추정)경 발표해 본격적인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시대를 열게 된다. 1960년대가 불과 6일 남은 12월 25일, 지금까지의 시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강력한 하나가 등장한다. 세이코가 ‘애스트론’으로 쿼츠 손목시계의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수정(쿼츠)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일정한 진동을 얻어낼 수 있다는 데에서 착안한 쿼츠 시계는 압도적인 정확성(일반적인 쿼츠의 진동수 32,768 khz를 Hz단위로 변환하면 32,768,000. 기계식의 대표적인 하이비트인 엘 프리메로의 진동수는 불과 5Hz, 당시 애스트론은 하루 오차 약 0.2초, 한 달 오차 약 5초는 기계식 시계의 하루 오차와 필적했다)으로 기계식 시계를 무대 뒤로 밀어낸다. 쿼츠는 시보, 방송용으로 제작되어 방 하나를 차지하는 거대한 크기의 시계에서 점차 벽시계, 탁상시계로 소형화되고, 손목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위스 시계 업계는 쿼츠 직격탄에 신음하게 된다.



1968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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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울트라 파인 1968

칼리버 1120은 퍼페추얼 캘린더와 같이 두께를 증가시키는 모듈과 결합했을 때 진가가 한번 더 발휘된다. 얇은 두께 덕분이다. 또 단독으로 쓰이더라도 얇은 두께의 무브먼트는, 보통의 무브먼트로는 완성할 수 없는 케이스의 측면 라인을 선사한다. 칼리버 1120을 탑재한 울트라 파인 1968의 정사각형 케이스는 린츠(Lindt)사의 신스(Thins) 초콜릿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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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 울트라 슬림

1955년의 수동 칼리버 1003과 마찬가지로 칼리버 1120 역시 예거 르쿨트르가 공급한다. 칼리버 1003이 바세론 콘스탄틴과 오데마 피게에만 공급된 것과 달리, 이 칼리버는 파텍 필립에도 공급된다. 두께 2.45mm의 울트라 슬림이다. 피아제는 1959년 당시 자동 무브먼트 칼리버 12P로 두께 2.3mm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 이 둘에는 차이가 있다. 1120은 풀 로터, 12P는 마이크로 로터 방식이다. 메인 플레이트 바로 위에 올릴 수 있는 마이크로 로터는 무브먼트를 더욱 얇게 만들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의 마이크로 로터 무브먼트인 유니버설 제네바의 칼리버 Cal.2-66는 2.5mm, 뷰렌의 칼리버는 2.85mm의 두께를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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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호이어 모나코(1969년)

현재 명예회장직을 수행 중인 잭 호이어가 호이어를 떠나기 전 남긴 성공 모델 중 하나. 공동 개발에 의해 완성한 칼리버 11을 탑재할 만한 케이스를 찾던 도중 낙점된 정사각형 케이스가 특징. 하지만 이 각진 케이스는 당시의 가공 기술로는 난점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잭 호이어는 방수 기술까지 갖추길 요구했다. 크라운 이외에도 푸시버튼이 있는 크로노그래프 모델이었기 때문에 케이스 완성의 어려움은 배가되었다.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모나코의 케이스는 사각형 시계의 상징적인 모델로 정착한다. 크라운은 케이스 왼쪽, 푸시버튼은 케이스 오른쪽에 있는 독특한 배치는 모듈형 자동 크로노그래프인 칼리버 11의 특성이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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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호이어 모나코 칼리버 11 리미티드 에디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스티브 매퀸이 열연한 레이스 무비 <르 망>에서 빛나던 모나코. 레이서로 분한 스티브 매퀸에게 드라이빙 스킬을 전수한 인물은 ‘크레이지 스위스’라 불리던 F1 레이서 조 시퍼(Jo Siffert)로 동시에 태그 호이어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었다. 시퍼의 권유로 모나코를 착용하고 영화에 촬영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의 PPL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영화를 통해 인지도가 상승한 모나코는 태그 호이어를 대표하는 라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인 모나코 칼리버 11은 레귤러 에디션과 달리 크라운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부러 바꿔놓았다. 오리지널 모델을 복기하려는 의도였으며, 무브먼트의 넘버도 칼리버 11로 동일하게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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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엘 프리메로(1969년)

‘The First’를 뜻하는 스페인어 엘 프리메로. 1969년 자동 크로노그래프 등장에서 가장 늦은 9월에 발표되었으나, 같은 해 등장한 경쟁자들이 단종된 것과는 달리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작명이 의도한 바대로 되었다고나 할까? 36,000vph로 진동하는 하이비트의 대명사이자 제니스의 주력 무브먼트이고, 에보슈로도 공급되면서 자동 크로노그래프 성장에 기여했다. 2000년대 접어들기 이전의 자동 크로노그래프 시장은 매우 좁은 선택지만 있었고, 메가 매뉴팩처인 롤렉스마저 한때는 엘 프리메로를 베이스로 만든 칼리버 4030을 데이토나 코스모그래프에 탑재한 역사가 있을 정도다(물론 롤렉스에 의해 진동수를 28,800vph로 내리는 등 상당 부분 수정이 이뤄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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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엘 프리메로 36,000VPH 트리뷰트 투 찰스 베르모

엘 프리메로의 40년 역사 중 가장 위기의 순간은 1975년이다. 제니스는 LVMH에 안착하기까지 몇 차례의 매각과 매수를 거듭한다. 인수된 미국 회사의 경영진은 기계식 시계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엔지니어인 찰스 베르모에게 엘 프리메로의 설계와 생산에 관련된 모든 걸 파기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베르모는 그 지시를 어기고 설계도와 부품을 잘 분류해 안전한 곳으로 숨긴다. 스위스 자본으로 다시 매각된 제니스는 베르모 덕분에 다시 엘 프리메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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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쿼츠 아스트론(1969년)

당시 가격으로 45만 엔에 판매된 애스트론은 매우 고가의 물건이었다. 물론 지금에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1969년의 경제 가치를 생각한다면 훨씬 큰 돈이었다. 중형차 한 대를 구입할 수 있는 가치다. 전자제품 양산의 혜택을 보고 있는 지금의 감각으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지만, 애스트론은 가장 첨단의 전자 기술로 만들어낸 시계였다. 애스트론이 가진 파괴력은 시계로서의 본질, 즉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는 데 있었고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기존의 것은 속수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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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쿼츠 아스트론 기념 에디션 RLS1003-05R

쿼츠 손목시계 탄생 40주년을 기념하여 2010년 발표된 쿼츠 애스트론은 1969년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케이스는 브라이트 티타늄을 사용했다. 초기 애스트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모델이다. 이 모델에 탑재된 쿼츠 칼리버 9F는 그랜드 세이코에 탑재되는 최고 레벨의 쿼츠 무브먼트다. 쿼츠 손목시계의 원조 세이코의 기술이 집약된 이 무브먼트는 오차 단위가 하루, 한 달 단위가 아니다. 다름아닌 1년으로 1년에 최대 +10초에서 -10초사이라는 놀라운 정확성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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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씨마스터 플로프로프(1970년)

포화잠수 기술의 도입에 의한 대책으로 탄생한 씨마스터 플로프로프의 이름에는 프로페셔널 다이버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포화잠수에 사용하는 헬륨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밸브를 갖추고 있는 플로프로프는 프로를 위한 시계답게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인 600m 방수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방수 성능에 도달하기 위해 독특한 케이스가 태어났고 좌우가 비대칭하고 매우 두꺼웠으며 오렌지색을 사용한 배색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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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씨마스터 플로프로프1200M

1960년대의 플로프로프를 복각했다. 모노코크 구조의 케이스와 푸시버튼을 눌러 베젤을 돌리는 방식까지 모두 동일하다. 다른 점은 방수성능이 1200m로 대폭 상승했다는 것과 크고 무거운 플로프로프가 아닌 크고 무겁지 않은 플로프로프라는 것이다. 스테인리스스틸이 아닌 티타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칼리버 8500이 탑재되었고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오렌지색을 여러 부분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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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s

쿼츠의 시대

정확성을 무기로 한 쿼츠 무브먼트의 힘은 강력했다. 대처가 늦었던 기계식 시계는 1970년대 긴 암흑기 시대를 보낸다. 전 세계 경제를 움츠리게 만든 오일 쇼크는 시계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애스트론의 등장은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던 스위스 깊은 산골의 시계 마을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운다. 쿼츠 손목시계의 계획이 스위스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스위스 시계 업계의 공동 개발 프로젝트였던 칼리버 베타21은 1965년에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상용화는 이미 애스트론이 나온 뒤인 1970년 오메가를 통해서였고, 세이코를 위시한 시티즌과 같은 일본과 해밀턴 벤추라, 부로바 아큐트론으로 전자산업적 접근을 시도한 미국 메이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만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같은 반도체 회사가 LCD 워치를 선보일 정도로 스위스 시계 시장은 위태로웠다. 또 정확성은 물론 수공에 의지한 노동 집약 형태인 기계식 시계와 달리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통해 점점 낮아진 가격 또한 큰 위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3년의 1차 오일쇼크, 1979년 2차 오일쇼크는 스위스 시계 업계를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다. 당시 스위스 시계 업계의 고용상황을 되짚어보자. 시계 산업에 종사한 인구의 80~90%가 실업자로 내몰렸고, 수많은 메이커가 불투명한 미래 앞에 문을 닫거나 생산시설과 파트를 파기했다. IWC의 엔지니어로 재직한 커트 클라우스는 <크로노스>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 당시 개발팀 부서의 유일한 일원이 자신이었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암울했다는 얘기다. 기계식 시계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던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계의 품질 관리가 가장 좋지 않은 시기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경매 시장에서 높은 값으로 낙찰되는 시계 중에는 이 무렵 만든 것들이 종종 있다는 것. 수준 낮은 품질 관리하에 생산된 일종의 불량품이 희소성, 특이성을 이유로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심리는 종종 묘한 구석이 있다. 1969년 발표된 자동 무브먼트 칼리버 11(일부 수정을 거쳐 칼리버 12로 곧 대체되었음)은 약 10년의 생산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1973년은 가장 유명한 자동 크로노그래프이자 가장 많이 생산된 자동 크로노그래프로 등극한 밸주(ETA에 흡수)의 칼리버 7750이 탄생한 해다. 1975년 제니스의 엘 프리메로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는 등 자동 크로노그래프도 어려운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칼리버 7750은 안정된 성능과 대량생산에 적합한 설계로 태어난 덕에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까지 긴 생명력을 누리게 된다.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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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Ref. 5402

가장 유명한 시계 디자이너로 살다간 제랄드 젠타의 대표작. 팔각형의 베젤과 8개의 스크루, 섬세한 태피스트리 다이얼, 케이스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브레이슬릿은 로얄 오크의 특징이다. 비교를 거부하는 개성적 디자인과 함께 로얄 오크는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의 시초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이엔드 메이커가 전통적 귀금속인 금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염가인 스테인리스스틸로 케이스를 만든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이로 인해 관습, 구속을 거부하고 자유를 향유하고자 한 젊은 부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어냈다. 이 위험한 모험은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극도로 위축된 스위스 시계 산업은 오데마 피게라고 다르지 않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극약처방이 바로 소재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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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Ref. 15202

올해는 로얄 오크가 탄생한 지 40년이 된 해다. 이에 맞춰 로얄 오크 컬렉션은 부분적인 리뉴얼의 결과로 새 로얄 오크 모델을 선보였다. 주축 모델인 Ref.15300과 첫 로얄 오크인 Ref.5402의 디테일을 살리고자 했다. 12시 방향에 있는 AP로고를 6시 방향으로 되돌렸고 바 인덱스의 길이를 늘렸다. 그리고 태피스트리 다이얼의 패턴을 작게 만들어 첫 시계 탄생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무브먼트에서는 크게 손볼 게 없었다. 40년 전 사용한 울트라 슬림 오토매틱 칼리버 2121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로터만 새롭게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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