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최초의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11 제작에 참여한 해밀턴이 50년이 지난 지금 역사의 기억을 다시 한번 소환했다. 카운트다운 GMT 크로노-매틱을 복각한 크로노-매틱 50이 그 주인공이다.

내용

1969년의 의미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1969년. 제니스의 엘프리메로, 세이코의 6139 그리고 브라이틀링, 호이어, 해밀턴-뷰렌, 드보이스-데프라즈가 합작 및 투자하여 공동으로 개발한 칼리버 11까지 총 3개의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해에 등장했다.
칼리버 11 제작에 함께 참여한 해밀턴은 해당 칼리버를 크로노-매틱으로 명하며 1970년대부터 자사 크로노그래프 모델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가 등장한 지 50주년이 된 2019년. 해밀턴은 워치메이킹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기억하고자 해당 무브먼트를 적용한 모델을 소환하고 새로운 크로노-매틱 50을 선보인다.




 


역사의 재현 

크로노-매틱 50의 원형은 크로노-매틱 E라고도 불리는 카운트다운 GMT 크로노-매틱이다. 이 시계는 칼리버 11에 GMT 기능을 추가한 크로노-매틱 칼리버 141을 적용한 모델로 1970년대 초반 시계임에도 불구하고 크로노그래프와 GMT 기능을 조합한 이색적인 시계다. 사실 해밀턴은 크로노-매틱 모델을 한차례 복각한 바 있다.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공개한 크로노-매틱 판유로가 대표적이다. 크로노- 매틱 판유로가 등장했을 당시 기대했던 복각 포인트를 적절하게 살려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이미 한차례 경험한 바 있는 해밀턴이자 최근 뉴트로 트렌드에 탄력을 받은 브랜드이기에 이번 복각 한정판 역시 기대하는 바가 크다.



크로노그래프, 선택과 집중

해밀턴은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단행했다. 크로노- 매틱 50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GMT 기능을 제거하고 오로지 크로노그래프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센터에 있던 GMT 핸즈는 물론 각 도시의 이름과 세컨드 타임존을 새긴 GMT 디스크는 과감히 삭제했다. 또한 6시 방향의 모델명 역시 크로노-매틱 카운트다운에서 크로노그래프 카운트다운으로 교체했다. 브랜드가 시계의 성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느낀 부분은 스트랩이다. 본래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적갈색 가죽 스트랩을 사용해 다소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복각을 진행하면서 크로노그래프와 어울리는 펀칭 디테일을 가미한 블랙과 레드 컬러의 가죽 스트랩을 더했다.




역판다 다이얼 디자인에 붉은색을 포인트로 더해 시계가 주는 인상이 상당히 강렬하다. 



강렬한 첫인상 

크로노-매틱 50과 카운트다운 GMT 크로노-매틱을 나란히 두고 보면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레트로 분위기를 풍기는 헬멧 형태의 케이스를 비롯해 원형을 공들여 살렸다. 독특한 디자인은 현존하는 모델과 견주어도 충분히 독보적이다. 공식적인 러그 투 러그의 길이는 51.5mm, 케이스 폭은 48.5mm로 상당히 장대한 수치이나 실제로 마주하면 케이스 크기 42mm 정도의 시계와 비슷한 인상이다. 케이스가 경사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과 좌우 3개의 버튼, 2개의 크라운이 자리하고 상하로는 러그 없이 일체형으로 케이스와 스트랩이 이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실질적인 다이얼 사이즈는 약 37mm로 그 안에 다양한 기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균형이 알맞다. 케이스 경사면을 보면 과거 모델에는 없던 헤어라인 피니싱을 새롭게 추가했는데 이 덕분에 케이스 여백이 주는 허전함도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케이스는 상당히 튼튼하다는 인상을 준다. 탑재한 칼리버 H-31의 지름 30mm인 것을 감안할 때 케이스 크기와 두께 16.05mm는 상당히 듬직한 수치이다. 또한 100m 방수가 가능해 실제로도 안정적인 내구성을 지닌다. 다이얼로 넘어가면 역판다 다이얼 구조의 투 카운터 크로노그래프 구성과 동그란 테두리를 유광 처리한 6시 방향의 날짜창과 인덱스 등 기본적인 구성 역시 과거 모델을 충실하게 살린 느낌이다. 3, 9시 방향에 있는 두 개의 카운터는 미세한 단 차이를 추가해 더욱 입체적으로 보인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카운터 핸즈의 길이가 시계 전체적인 비율에 비해 다소 짧은 느낌이 있다.

대신 원형이 가진 포인트 컬러를 유지한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시계의 주요 부분과 스트랩 펀칭 디테일에 레드 포인트를 사용해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가지고 있는 강렬하고 속도감 넘치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세대에 따른 변화 

새롭게 탄생한 크로노-매틱 50은 자사의 무브먼트 H-31를 장착했다. 칼리버 H-31은 ETA가 해밀턴에 독점 공급하는 무브먼트로 밸주 7753을 수정한 버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안정성을 인정받은 범용 무브먼트이기에 작동성 면에는 특별한 이변은 없다. 진동수 역시 28,800vph로 매우 일반적이다. 기존 밸주 7753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면 바로 향상된 파워리저브다. 밸주 7753은 42시간 파워리저브를 지원하나 H-31은 메인스프링의 변화로 60시간 파워리저브가 가능하다. 무브먼트가 변함에 따라 시계 구성 역시 확연하게 바뀌었다. 흥미롭게도 여타 모델과 달리 다양한 버튼이 있어 그 변화가 더욱 극명하게 다가온다. 기존에 없던 초침은 9시 방향의 스몰세컨드로 자리 잡았고, 크로노그래프 세컨드는 중앙에 남았다. 또한 9시 방향에 있던 30분 카운터는 3시 방향으로 자리를 옮기고 기존에 있던 12시간 카운터는 삭제됐다. 크라운으로 날짜를 재빨리 변경할 수 없는 밸주 7753의 특성은 새로운 기능의 버튼을 탄생시켰다. 이로써 10시 방향의 검은색 버튼은 크라운이 할 수 없는 날짜 변경을 단번에 해결해준다. 해당 무브먼트는 과거 모델과 동일하게 솔리드백에 담겨 있어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다.




입체감을 더한 두툼한 돔형 사피이어 크리스털 글라스가 특히 인상적이다.


아메리칸 클래식 크로노-매틱 50
Ref. H51616731(1972개 한정)
기능 시·분·초, 날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셀프와인딩 H-31, 28,800vph, 27스톤, 60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48.5 x 51.5mm, 스테인리스스틸, 100m 방수, 솔리드백
가격 329만원


조작의 재미
디자인 외에도 이 시계의 또 다른 매력을 꼽으라면 당연 다양한 조작이 가능한 3개의 버튼과 2개의 크라운이다. 우선 버튼 기능에 따라 컬러를 달리한 점에서 브랜드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과거 모델과의 싱크로율을 살리면서 실용성과 디자인 모두 잡았다. 먼저 크라운은 은빛을 낸다. 3시 방향의 크라운은 기본 상태에서 와인딩을 하고 한단을 뽑아 시간을 설정할 수 있으며, 8시 방향의 크라운은 스크루 방식으로 풀어 카운트다운 디스크를 양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다. 오른편 2개의 붉은색 버튼은 크로노그래프 조작에 사용한다. 5개의 버튼을 체계적으로 나눈 것은 훌륭하지만 마감과 조작감에선 조금 아쉬움이 있다. 2개의 은색 크라운은 무광 처리를 했는데 표면이 거칠어 손으로 감을 때 촉감이 좋은 편은 아니다. 촘촘하게 난 세로 홈 역시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라 다소 날카롭게 느껴진다. 또한 두툼한 케이스 사이로 크라운을 조작하기 쉽지 않다. 케이스에 비해 노출된 크라운의 길이가 다소 짧아 크라운을 풀거나 조일 때 케이스에 손이 걸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반면 크로노그래프와 날짜 조작 버튼은 단순하게 누르는 방식이라 높이도 적당하고 조작감도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평소 착용하는 시계가 크라운 1단에서 날짜를 조정하는 방식이었던 터라 오히려 이처럼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편했다. 또한 오른손에 시계를 착용하는 필자는 케이스 좌우로 버튼이 포진해 있어 불편함 없이 착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발견했다.


카운트다운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 시계와 달리 오늘날 흔히 볼 수 없는 카운트다운 기능을 더한 점도 신선하다. 0점을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갈수록 숫자가 점차 줄어드는 카운트다운 디스크의 대표적인 활용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목표 시간을 향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현재 시간이 10분이고 목표 시간이 30분이라면 카운트다운 디스크의 0점을 30분 위치에 세팅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10분 위치에는 숫자 20에 해당하는 카운트다운 디스크가 자리한다. 이로써 목표 시간까지 20분이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원하는 시간에 맞춰 알람처럼 활용하는 방법이다. 현실적인 예로 라면을 4분만 끓여야 한다면 현재 분침 위치와 카운트다운 디스크의 숫자 4를 동일 선상에 맞추면 된다. 이때부터 4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분침이 카운트다운 디스크 0점에 도달했을 때 불을 끄면 된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보았을 때 실생활에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사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오히려 카운트다운 기능은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드를 읽은 시계
최근 시계 시장에서 가장 굵직한 트렌드는 뉴트로와 스포츠다. 특히 이 둘을 조합한 복각 크로노그래프는 애호가들의 관심 대상이다. 게다가 최근 뉴트로 흐름을 제대로 탄 해밀턴이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시계이기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실제 시계를 접하기 전 사진과 상세 스펙으로 시계를 판단했었다. 개성이 너무 강한 건 아닐지, 크기가 너무 큰 건 아닐지 우려했다. 하지만 실제로 시계를 착용해보니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크로노그래프에 집중한 덕에 각각의 디테일이 시계를 일관된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가장 걱정했던 크기는 예상보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오히려 놀랐다. 평소 케이스 지름이 크거나 러그가 짧은 시계를 즐겨 착용하는 이들이라면 이 시계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진과 수치에 지레 겁먹지 말고 이 시계를 손목에 직접 올려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크로노-매틱 50은 기념 모델답게 카운트다운 GMT 크로노-매틱 탄생 연도에서 착안해 1972개 한정으로 선보이며 각각의 고유 번호를 케이스백에 새겨 제공한다. 가격은 329만원으로 기존 해밀턴의 시계보다 가격대가 다소 높게 측정돼 있다. 하지만 특별하게 흠잡을 데 없는 안정적인 성능과 이 시계가 가진 개성이 독보적으로 뚜렷하기에 기존 모델을 벗어나 색다른 모델을 찾는 이들에겐 충분히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시계가 될 것이다.



시계가 평면이 아닌 경사면이 있는 입체적 디자인이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델 PAWEL
의상 협찬 검은색 라이더 재킷, 셔츠 CALVIN KLEIN JEANS 갈색 라이더 재킷, 니트 SHOW&TELL 데님팬츠 BROOKS BROTHERS


문의 해밀턴 032-320-7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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