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회초년생 시절에 태그호이어 포뮬러를 분실하고 친구와 함께 샤넬 J12 모조품을 구입했습니다. 제 시계를 본 친구들은 진짜냐고 묻더군요. 그때 이 시계가 진짜라면 얼마일지, 모조품보다 얼마나 더 좋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됐죠. 처음 시계에 빠져들었을 때에는 모조품과 관련된 에피소드 덕분에 샤넬 시계를 3개나 구입했습니다.(웃음)
| 평범한 컬렉션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시계를 갖고 싶습니다. 한정 모델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시계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시계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모나코처럼 가죽 스트랩을 메탈 브레이슬릿으로 바꾸거나 독특한 가죽 스트랩을 매칭해 다른 느낌을 주려 합니다. 소장 중인 모든 시계에 끼워놓은 스트랩은 많은 고민과 다양한 시도 끝에 결정한 겁니다.(웃음) 스트랩은 70~80개 정도 있습니다. 고가의 스트랩보다는 6~7만원 정도하는 스트랩을 여러 개 구입해 번갈아가며 착용합니다. 또 다른 재미죠.
프레드릭 피게의 칼리버 1185를 사용한 불가리 디아고노 칼리브로 303 크로노그래프. 화려한 시계를 갖고 싶어 구입했다고 한다. 연보랏빛이 도는 악어가죽 스트랩은 따로 주문 제작한 것이다.
| 같은 무브먼트를 사용한 시계가 여럿 보이는데 시계를 모으는 입장에서 어떻습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무브먼트가 같더라도 디자인이 다르면 괜찮습니다. 같은 무브먼트를 사용한 시계라고 해도 디자인은 천차만별이죠. 디자인이 멋지다면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격을 떠나 다양한 기계식 시계를 경험하고 나니 무브먼트의 성능은 대부분 비슷하더군요. 대신 디자인이 강렬한 시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처음 관심이 갔던 시계는 위블로였습니다. 그 후에는 태그호이어의 크로노그래프를 좋아하게 됐죠. 이때부터 크로노그래프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크로노그래프 시계만 꾸준히 모았나요?
아닙니다. 취향은 계속 변하더군요. 드레스 워치, 심플 워치, 다이버 워치에도 눈을 돌렸죠. 그리고 다시 크로노그래프로 돌아왔을 때는 다이얼과 서브 다이얼의 색이 대비를 이루는 소위 판다 다이얼 크로노그래프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계기가 된 것은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문워치였습니다. 문워치 한정 모델을 찾으면서 다양한 판다 다이얼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판다 다이얼 크로노그래프를 위주로 시계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태그호이어 구형 모나코와 까레라 칼리버 17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빈티지한 디자인과 판다 다이얼 크로노그래프는 L씨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다. 모나코에 메탈 브레이슬릿을 끼운 것이 인상적이다.
| 3시와 9시의 투 카운터나 3,6,9의 스리 카운터 크로노그래프만 구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6,9,12의 스리 카운터 크로노그래프는 왠지 다이얼 밸런스가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균형감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요? IWC의 포르투기저 Ref.3714처럼 균형이 완벽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입하기 꺼려지더군요.
| 크로노그래프의 무브먼트는 중요하지 않나요?
ETA나 셀리타의 범용 무브먼트 이상의 것들은 성능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크로노그래프를 자주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무브먼트가 더 우월한지는 저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롤렉스의 4130이나 제니스의 엘 프리메로 등 다양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경험했지만 큰 차이를 실감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착용하지 않는 시계는 대부분 멈춰 있기 때문에 오차도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핸드와인딩인지 셀프와인딩인지 정도만 고려합니다.
| 무브먼트의 기계적 아름다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저는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글라스백보다 막혀 있는 케이스백을 더 선호합니다. 개인적으로 글라스백은 착용감이 좋지 않습니다. 더 무겁고 두껍기 때문이죠. 무브먼트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처음 얼마 동안에 불과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잘 안 보게 됩니다. 하이엔드 시계가 아닌 이상 쉽게 접하고 모을 수 있는 수준의 무브먼트는 심미적으로 대단히 뛰어나진 않으니까요.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문워치 시리즈. 아폴로 11호 35주년 기념 모델, 아폴로 13호 45주년 기념 실버 스누피 어워드, CK2998. 모두 인기가 많은 한정 모델이다.
| 하이엔드와 그렇지 않은 시계를 나누는 기준은 미적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나요?
하이엔드 시계의 덕목은 무브먼트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가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브먼트의 성능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성능이 이미 검증된 시계가 정확하지 않다면 조정을 하거나 오버홀 또는 수리를 해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면 그만입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에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환상을 갖고 있지 않죠. 비교적 저렴한 범용 ETA 무브먼트에 비해 얼마나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딱히 메리트가 없습니다. 하이엔드 시계를 구입하는 이유는 뛰어난 성능이 아니라 일반적인 시계에서는 볼 수 없는 심미적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사람의 손으로 시계를 만드는 비중이 높았을 때는 사람들이 정교한 가공과 마감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시계가 일정 수준 이상의 마감과 정밀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저가 브랜드에서도 제대로 된 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이엔드 브랜드는 컴퓨터 가공 기술을 살려 더 정밀한 시계를 만들어야 할까요?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딘가 살짝 엉성해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면 충분히 그 가치를 어필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파란색이 들어간 시계가 유독 많이 보입니다.
여러 다이얼 중에서 과하지 않으면서도 튈 수 있는 게 파란색 다이얼이죠. 종류도 많고, 원래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요. 또 검은색이나 흰색 다이얼보다 특이하죠. 시계를 모을 때 검정과 흰색 다이얼을 기본으로 하지만 특이한 시계를 갖고 싶을 때는 파란색 다이얼을 주로 선택합니다.
| 특이하게 모나코에 메탈 브레이슬릿을 장착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시계를 선호합니다. 모나코는 인기가 많지만 대부분 가죽 스트랩 모델이죠. 그래서 모나코를 좀 색다르게 착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메탈 브레이슬릿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구형 모델에는 메탈 브레이슬릿 버전이 있었죠. 매장에 수소문한 결과 메탈 브레이슬릿이 하나 남아 있다는 연락을 받고 구입했습니다. 주변사람 모두가 말렸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 멋집니다. 착용감도 좋고요. 어떤 분들은 따로 제작했냐고 묻기도 합니다.(웃음)
2015년에 출시한 에독스의 하이드로섭 50주년 한정 기념 모델. 초록색과 파란색의 조합이 특이해 구입했다고 한다. 실물을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무작정 해외구매를 했다. 515개 한정.
| 복각 제품은 어떻습니까?
빈티지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태그호이어의 칼리버 17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의 경우 예전 모델을 복각했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죠. 빈티지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며 현대적인 시계로 만들었습니다. 모나코처럼 최초의 디자인을 지금까지 간직한 시계도 좋아합니다. 복고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만 촌스럽지 않게 복각한 시계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시티즌을 구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가진 기계식 시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연오차가 5초 미만이고, 빛이 없는 상태에서는 멈춰 있다가 다시 빛을 받으면 현재 시간으로 돌아오는 기능이나 퍼페추얼 캘린더처럼 기계식 시계에서 접하기 어려운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케이스도 슈퍼 티타늄에 듀라테크 코팅을 해놨죠. 덕분에 매우 가볍고 스크래치에도 강합니다. 사파이어 글라스도 무반사 코팅이 아니라 투명 코팅을 해서 빛을 99%이상 투과해 유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계식 시계가 추구하는 것이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면 시티즌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어 구입했습니다. 쿼츠는 쿼츠의 미덕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티즌은 가장 쿼츠다운 시계입니다. 실용성이 뛰어나고 브레이슬릿의 유격이나 마감도 훌륭하죠. 시티즌의 시계는 한 번 더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새로운 것에 꾸준히 도전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브랜드라 좋아합니다.
시티즌의 더 시티즌 AQ1040. 에코 드라이브로 구동하며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갖췄다. 뛰어난 마감과 실용성 및 기능성을 모두 갖췄다.
| 시계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까?
시계는 스펙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크기가 크거나 두께가 두꺼워서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됩니다. 또 손목 위에 잠시 올려보는 것만으로는 시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직접 착용해봐야 시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빈티지 론진을 세 개씩이나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빈티지 시계의 크기가 드레스 워치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련된 디자인보다는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고요. 그래서 현행 드레스 워치를 살 바에는 빈티지 시계가 나을 것 같아 구입했습니다. 빈티지를 꾸준히 모아온 것도 아니고,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어떤 시계를 구입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론진의 30L 무브먼트를 구입했죠. 수량도 많고 상대적으로 실패할 확률도 적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지 관리가 쉽고, 크기도 좋죠. 3개 중 하나는 스테인리스스틸이고 나머지 두 개는 로즈골드 케이스입니다. 디자인과 크기가 전부 다른 것도 특징입니다.
같은 무브먼트지만 서로 다른 세 개의 론진. 각각 미국 옥션, 이베이, 지인을 통해 구입했다. 세 모델의 크기와 디자인이 전부 다르다.
| 시계의 디자인을 제외하면 무엇이 중요한가요?
착용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착용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마감인데, 심미적인 부분을 만족시키면서 착용감까지 훌륭하게 마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서리 마감이 너무 날카로운 시계는 좀 불편하더군요. 반대로 각을 너무 뭉개놓은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미적으로 훌륭하지 않으니까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도 중요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까요. 언제나 특이한 것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 갖고 싶은 시계가 있다면?
랑에 운트 죄네 삭소니아 핸드와인딩, 글라슈테 오리지날 파노매틱 루나 블루 다이얼, 제니스 엘 프리메로 복각 모델입니다. 전혀 일관성이 없죠.(웃음) 그리고 오메가의 CK2998 골드 모델도 갖고 싶습니다. 스테인리스스틸 모델을 갖고 있긴 하지만 골드 모델은 빈티지한 느낌이 강해 매력적이더군요.
칼리버 39를 탑재한 글라슈테 오리지날 파일럿 워치. 단종된 구형 모델이 더 마음에 들어 어렵게 구입했다고 한다. L씨는 글라슈테의 정통성을 계승한 브랜드는 글라슈테 오리지날이라고 이야기했다.
| 다른 취미는 없습니까?
기계식 키보드와 헤드폰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키보드나 헤드폰은 스토리텔링이 되는 물건은 아니었죠. 시계는 오랜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 시계에 싫증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다른 취미보다 더 흥미로워서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또 컬렉션을 완성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시계가 있어 지겹지 않습니다.
| 현재 가장 관심 있는 장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이버 워치와 파일럿 워치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이버 워치는 구입할 시계를 물색 중입니다. 파일럿 워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독일 파일럿 워치가 매력적이더군요. 재미난 이야기도 많고, 스위스 시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으니까요.
| 가장 만족스러웠던 시계는 무엇인가요?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입니다. 이야깃거리도 많고, 시계를 모으는 재미도 있죠. 태그호이어의 모나코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모나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저에게는 개성 넘치는 시계입니다. 제 취향에 꼭 맞는 시계죠.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크로노그래프. 처음 봤을 때는 매우 불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착용하니 착용감이 매우 훌륭해 놀랐다고 한다. 로열 오크의 아이덴티티와 판다 다이얼 크로노그래프의 조합이 어우러진 시계.
| 최종적으로 어떤 컬렉션을 구상하고 있는지요?
판다 다이얼 크로노그래프를 중심으로 디자인이 훌륭하거나 특이한 시계,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시계로 컬렉션을 구성할 생각입니다. 판다 다이얼 크로노그래프의 비중을 60~70%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독특하거나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계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게재호
47호(2016년 11/12월)
Editor
이재섭
사진
기성율
© Sigongsa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l rights reserved. © by Ebner Media Group GmbH & Co. KG
댓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