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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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LL OF FAME - PART 1

내용

Before 1900 

원시 형태의 손목시계

시계를 손목에 얹는다는 개념이 싹트기 이전, 손목시계는 이미 등장해 있었다. 만든 이가 그를 의도했든 혹은 우연이든 간에 손목시계의 시대라 부르는 20세기 전에, 즉 지금의 형태와 부합하는 시계가 존재했다. 19세기 초반 바바리아의 어거스타 공주에게 납품한 시계는 작은 여성용 회중시계를 넣어 만든 팔찌 모양의 시계로, 손목에 착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팔찌에 고정된 형태의 시계가 점차 등장했고, 개중에는 팔찌보다는 손목시계에 가까운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손목시계’라 부르지는 않았다. 



1900 ~ 1910’s

손목시계, 그 시작

케이스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러그와 손목을 감는 스트랩 혹은 브레이슬릿을 완벽히 갖춘 시계를 손목시계라 부른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첫 시계는 까르띠에의 산토스가 유력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 시계 역사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휴대용 시계로 긴 시간 사랑받은 회중시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가기 위한 짐을 꾸리게 된 것이다. ‘손목에 차는’ 새 방식을 먼저 받아들인 건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한 감각 덕분이었다. 시계가 기계가 아닌 액세서리란 생각에서 일어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손목시계의 역사는 여성에 의해 시작된 셈이다. 한편 남자가 손목시계를 착용한 시점에 관해서는 그 이야기가 분분하다. 유력한 설 중 하나는 ‘보어 전쟁 기간’ 설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던 영국과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 혈통의 보어족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말한다. 제1차 보어 전쟁이 1880년, 제2차 보어 전쟁이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뒤인데, 전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남자의 손목 위에 시계가 올라간 시점이 꽤 앞당겨지는 셈이다. 또 하나의 설은 어느 시점이라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긴박한 전투 중에 생성됐다. 일일이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낼 틈이 없었고, 와이어에 시계 케이스를 적당히 용접하고 스트랩을 연결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간이 형태일 뿐이다. ‘어떤 시계가 진짜 손목시계의 시작인가?’에 대한 여부는 케이스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부분의 변화로 판단해야 한다. 즉 디자인과 기능 측면을 모두 지닌 ‘러그(기존의 와이어가 하던 역할을 대체하는)’를 가진 시계가 무엇인지 중요해진다.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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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산토스

산토스의 부탁을 받은 루이 까르띠에는 시계를 완성하기 위해 워치메이커인 에드몬드 예거에게 도움을 청한다. 예거 르쿨트르의 ‘예거’다. 이때 산토스에게 전달된 시계는 대량 생산용이 아니었다. 산토스 완성 1년 후, 짧은 러그를 가진 토노 케이스 모델이 까르띠에에 등장하면서, 손목시계에 대한 본격적 접근이 이루어진다. 오더 메이드였던 산토스가 양산형 모델로 생산을 시작한 건 1911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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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산토스 100

산토스 100 모델은 오리지널을 부풀린 것 같은 디자인으로 착용 시 더욱 웅장한 느낌을 준다. 근육질의 남성처럼 보인다. 초기 산토스는 손목시계용 자동 무브먼트가 개발되기 이전에 만들어졌다. 사이즈가 작았다는 얘기다. 사이즈가 커진 지금 모델에는 로터가 회전하기에 충분한 케이스 여유가 생겼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시계는 그간 다양한 파생 모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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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가장 유력한 첫 번째 손목시계는 까르띠에의 산토스다. 브라질 출신의 모험가, 비행사였던 알베르토 산토스 듀몽이 그의 절친한 친구 루이 까르띠에에게 부탁해 완성한 시계로, 사각형 케이스에서 자연스럽게 뻗어나온 러그를 가졌다. 산토스 프로토타입이 완성된 것은 1904년으로 이를 최초의 손목시계가 등장한 해라 본다. 이에 대해 산토스는 여러 차례 도전을 받아왔다. 1880년대의 광고를 통해 보면, 손목시계 형태의 시계는 구스타프 프라이스에 의한 여성용 시계(팔찌 형태)와 1890년대의 몇몇 불완전한 러그 형태를 갖춘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그들 회사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고, 공식 기록이 아닌 터라 이에 힘을 싣기는 어렵다. 한편 그 당시 시계에 영향을 끼친 주요 예술 사조인 아르데코(Art Déco)는 아르누보(Art Nouveau)에 대한 반발에 의해 형성되고 있었다.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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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탱크

제1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멈춘 뒤,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이 모델은 현대 지상전의 상징인 탱크를 모티프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독일 서부전선에 투입된 프랑스 르노(Renault)제의 FT다. 탱크 모델의 디자인에서 FT를 찾으려면 정면과 측면을 봐야 한다. 정면에서 본다면 케이스와 러그의 경계 없이 곧바로 케이스에서 뻗어나간 실루엣이 탱크의 캐터필러이고, 케이스 측면에서는 FT의 캐터필러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모델이기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베젤, 케이스 그리고 러그의 연결이 독특한 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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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탱크 프랑세즈

1990년대 중반 발표된 탱크 프랑세즈는 수많은 탱크 베리에이션의 하나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가장 익숙하다. 이는 곧 가장 성공적인 탱크 모델임을 말한다. 이 시계는 브레이슬릿을 통해 케이스가 표현하려 하는 테마를 확대했다. 탱크 프랑세즈 이미지 중 측면 이미지가 많은 이유는 브레이슬릿의 디자인을 통해 캐터필러의 모양을 큰 상상력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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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s

공존의 시대

손목시계용 오토매틱 무브먼트가 1920년대 처음 선보인다. 구동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한편 시계 디자인은 아르데코와 바우하우스 등 다양한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


곡선미를 발산하는 것이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형식이라면 아르데코는 이와 대조적으로 직선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또 패턴의 반복, 기하학적인 요소가 더해져 모던하며, 공업 생산 방식 역시 아르데코의 특징이다. 1925년 파리에서 열린 현대 장식 미술, 산업 미술 국제전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1925년 양식’이라 불리며, 이는 시계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된 1910년 후반 독일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된다. 이는 1920년대의 예술 사조로 이어진다. 바로 바우하우스(Bauhaus)를 일컫는다. 바우(bau)는 독일어로 ‘짓는다’는 뜻이고, 하우스(haus)는 ‘집’을 뜻한다. ‘집을 짓는다’는 의미의 바우하우스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에 의해 확립되었고,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까지 그 의미가 확산되었다. 기능미를 최우선으로 하는 바우하우스 사조는 1930년대 바우하우스 교장을 역임한 루드비히 미스 반 데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말한 ‘Less Is More(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간결하게 정리된다.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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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 윔즈

크라운을 당기면 초침이 멈추는 핵(Hack) 메커니즘은 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고안되었다. 작전 수행에서 정확한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군의 필요가 시작이라 알려져 있다. 론진과 미 해군 장교였던 필립 반 혼 윔즈가 함께 완성한 이 시계는 핵 메커니즘의 수혜를 받지 못한 당시에 역발상으로 만든 시계다. 라디오 시보에 맞춰 시간 오차를 조정하고자 했지만 초침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초침에 맞춰 내부 초 카운터를 돌렸다. 초침과 안쪽 다이얼의 눈금 0을 맞춰 시보와 초 단위 동기화가 가능해졌다. 세컨드 세팅이라는 기능으로 알려진 윔즈는 파일럿 워치의 시초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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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 헤리티지 컬렉션 윔즈 세컨드 세팅

오리지널의 디자인을 그대로 간직했다. 케이스 가공은 이전의 것을 능가하겠지만 말이다. 세컨드 세팅을 위한 인 다이얼은 갖추었지만 필요성은 없다. 현재 윔즈에 탑재된 칼리버 L699의 베이스 무브먼트인 ETA A07.161은 크라운을 당기면 초침이 멈추는 핵 메커니즘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칼리버 A07.161은 ETA의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7750에 살을 붙여 대형화한 발그랑주(Valgranges) 시리즈다. 이 칼리버는 특이하게도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삭제하고 시간과 날짜 기능만 남긴 자동 무브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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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1920년대는 아르데코, 바우하우스 등의 사조가 공존하는 시대였다. 아르데코는 당시의 예거 르쿨트르의 시계에서, 바우하우스는 마지막 계승자로 일컫는 막스 빌(Max Bill)과 그가 디자인한 주방용 시계, 그리고 막스 빌에게 영감을 얻은 융한스(Junghans)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계의 기능을 살펴보자. 회중시계에서 이미 구현된 오토매틱 방식은 이 시기 손목시계용으로 처음 등장한다. 1926년 영국의 워치메이커 존 하우드(John Harwood)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터가 사람 손을 대신해 태엽을 감는 시대의 시작으로, 대중화가 함께 이루어진다. 존 하우드의 당시 자동 무브먼트는 로터가 360도 회전하지 않았으며, 양 끝에 범퍼가 달린 ‘범퍼식’이었다. 이후 360도 회전 방식, 범퍼 방식 등 다양한 자동 무브먼트가 한동안 공존한다. 안타깝게도 존 하우드의 회사는 1930년대에 사라졌다.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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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르쿨트르 칼리버 101

칼리버 101은 길이 14mm, 폭 4.8mm, 두께 3.4mm인 초소형 무브먼트다. 바게트 형태의 이 무브먼트는 첫 생산이 시작된 1929년 당시 연간 50개 정도만 생산했다. 지금의 대량생산 기술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적은 수량은 작은 크기의 부품으로 구성되는 칼리버 101의 생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힘든 공정으로 태어났지만 칼리버 101은 매우 작은 사이즈 덕에 다른 무브먼트가 들어갈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가는 팔찌 형태는 비교적 평범한 활용법이었고 반지 속에서도 시간을 표시할 수 있었다. 작은 사이즈뿐 아니라 거의 느낄 수 없는 칼리버 101의 무게 덕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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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르쿨트르 조아리레리 101 1938

현재에도 생산되는 칼리버 101은 여전히 팔찌형 손목시계에서 옛날을 그린다. 간혹 투명상자 같은 리베르소에서 작지만 큰 존재감을 비추기도 한다. 조아리레리 101 1938 모델은 1938년 아르데코 시대로의 여행을 선사한다.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브레이슬릿 측면에서 기하학적인 패턴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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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스 탕겐테(1992년)

노모스는 1991년에 설립되었다. 따라서 바우하우스의 시대를 몸소 겪은 노모스 빈티지를 찾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대신 탄겐테의 모습으로 바우하우스 사조를 느낄 수 있다. 철저하게 기능을 고려한 디자인은 매우 단순한 바늘의 모양, 평면적이며 간결한 프린트 방식의 인덱스에서 드러난다. 케이스 형태도 마찬가지다. 탄겐테는 3/4플레이트를 사용한 독일 양식의 칼리버 알파를 탑재했으며, 노모스의 대표 얼굴은 물론, 독일을 대표하는 시계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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